[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우리 집에선 다 본 신문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따로 차곡차곡 모아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쌓이면 지인에게 준다. 국산 브랜드 제품을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판하는 친구다. 신문은 직판 제품 포장하는 데 쓰인다. ‘최신 한국 신문’으로 포장함으로써 이 제품이 중국산 짝퉁이 아니라 진짜 한국산이란 걸 인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고객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수년 전, 친구가 내게 다 본 신문지를 모아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 소비자도 자국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새삼 체감했다.
| 알리익스프레스(왼쪽)와 테무 애플리케이션 아이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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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알테쉬) 같은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이른바 C커머스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용자 수가 단시간 내 폭발적으로 늘며 쿠팡, G마켓, 옥션 같은 K커머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올 들어 월평균 이용자 수가 700만~800만명에 이르렀다. 어느새 주변에서도 C커머스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고, 최근 우리 집에서도 C커머스를 시작했다.
제품 신뢰도는 아직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다. 한국 쇼핑몰에서 하나를 살 가격에 비슷한 제품 몇 개를 더 살 수 있으니 가끔 불량 제품이 오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게 이를 애용하는 지인의 설명이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쓰는 많은 일상용품이 중국산인 만큼 이를 여러 유통 절차를 생략한 중국 쇼핑몰 직구가 소비자에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C커머스 제품이 특별히 싼 이면에는 이곳 유통 제품에 ‘신뢰의 가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존 유통업자가 같은 제품이라도 C커머스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건 단순히 더 많이 남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제품 안전성 시험·인증 같은 정식 수입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한 비용도 포함돼 있다. 중국 직판 사업자 친구가 굳이 ‘최신 한국 신문’을 포장재로 쓴 것처럼 정식 수입사도 KC 인증 마크를 받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인다.
정부가 모든 소비자, 모든 제품에 이 신뢰의 가격을 강제하는 건 쉽지 않다. 정부가 지난 5월 국민 안전·건강을 이유로 어린이제품 등의 해외 직구에 대해 KC 인증 취득을 의무화하는, 사실상 개인의 직구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가 논란 끝에 시행을 보류한 게 단적인 예다.
다만, 정부와 유통기업, 소비자 모두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번쯤 신뢰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논란의 KC인증은 모든 나라가 자국에 안전한 제품을 유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인증이다. 중국 CCC인증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제도적 뒷받침으로 쌓인 신뢰의 가격 덕분에 중국 소비자도 ‘최신 한국 신문’으로 포장된 한국산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정부는 지금껏 쌓아온 이 신뢰의 가치를 훼손할 섣부른 정책 발표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국내 유통사도 C커머스의 약진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C커머스 사업자 역시 국내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스스로 ‘싸지만 믿지 못할’ 중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오랜 편견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