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로젠은 지난 4월 이사회를 열고 비상장 회사인 에이프로젠과 유가증권 상장사인 에이프로젠 KIC(007460), 코스닥상장사인 에이프로젠 H&G(109960) 3사 합병을 추진키로 의결했다. 에이프로젠 KIC를 합병법인으로 두고 에이프로젠·에이프로젠 H&G를 흡수합병해 코스피에 상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에이프로젠을 우회 상장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에이프로젠 측이 지난 6월 최초로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최근까지 4차례 정정을 요구했다. 회사 측은 자진 정정을 포함하면 여섯 차례나 증권신고서를 고쳤으나 끝내 금융당국으로 승인을 받지 못하자 결국 합병을 철회한다고 8일 공시했다.
당국과 에이프로젠의 줄다리기 이유는 비상장법인인 ‘에이프로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컸기 때문이다. 흡수되는 에이프로젠 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합병 법인인 에이프로젠 KIC는 에이프로젠 주주에게 많은 주식을 내줘야 한다. 회사는 최초 에이프로젠KIC과 에이프로젠 합병비율을 1대16.38로 잡았다가 최종 1대14.94까지 낮췄으나 금감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에이프로젠은 김재섭 대표이사(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이 77.44%(보통주 기준)다.
금감원 관계자는 “합병가액을 산정할 때 에이프로젠의 미래가치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회사가 현재 제품화돼 있는 것은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뿐”이라며 “에이프로젠 가치를 판단할 때 합리성과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요구했는데, 회사 측에서 이를 충분히 제시하기 곤란했기에 철회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설명했다.
회계법인 따라 에이프로젠 가치평가 달라질까
에이프로젠은 3사 합병을 추진하면서 중견급 S회계법인으로부터 가치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에이프로젠 측이 회계법인이 산출한 평가를 크게 벗어나기 부담스러워 금감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또 재합병을 추진할 때 새롭게 외부평가를 맡을 회계법인이 기존 S 회계법인의 평가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는 내부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다른 회계법인이 비상장사인 에이프로젠을 재평가 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상장사는 통상 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가치평가(시가평가)가 많이 쓰인다. 비상장사의 경우 상장사와 합병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해 가치를 산출하는데, 매출도 없고 임상만 진행 중인 바이오기업 같은 경우는 평가자에 따라 수익가치 산출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기업가치가 상당히 차이날 수 있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제조업과 달리 바이오기업이라면 평가자에 따라 굉장히 차이가 날 수 있다. 임상 성공 가능성 판단과 임상 이후에 대한 것 등 전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평가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제 평가를 해보면 평가자에 따라 차이가 엄청나게 클 수 있다”며 “더 규모가 큰 회계법인에서 평가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는 3사 합병 재추진과 함께 에이프로젠 직상장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이사는 “앞으로 감독기관의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판단이 서면 합병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면서도 “에이프로젠 주주 중에는 직상장 추진을 희망하는 분들도 상당수 계시는 것을 알기에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주변과 관계기관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설명했다.
실제 3사 합병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금감원에 빨리 3사 합병을 승인하라는 이들과 에이프로젠 직상장을 위해 합병을 거부하라는 민원인들의 전화가 뒤섞여 관계자들이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철회 이후 일정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외부 평가결과를 다시 받아 이사회 결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프로젠 관계자는 향후 일정과 관련 “현재는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기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빨라야 3분기보고서가 나오는 연말쯤에나 합병 재추진이나 직상장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