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일본의 위기가 아베의 위기는 아니었다

정치적 야심으로 추진한 도쿄 올림픽, 국민에게는 부담으로
코로나 위기 속 정치스캔들 묻혀…지지율 하락세 '스탑'
"도쿄올림픽, 인류 승리 상징으로" 국면전환 군불떼기
  • 등록 2020-03-26 오전 1:00:00

    수정 2020-03-26 오전 1:00:00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7월 24일 도쿄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린 세레모니 행사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인류가 코로나19에 승리한 증거로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개최하고 싶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4일 올해 여름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확정한 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당초 아베 정권은 이번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2001년 있었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부흥을 알리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정상개최냐, 연기냐, 취소냐를 두고 우왕좌왕 하던 사이 어느새 포장지는 ‘인류의 승리’로 바뀌었다.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연기를 처음 언급한 것은 23일이지만 지난 16일 주요7개국(G7)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완전한 형태”라는 단어를 강조했다는 것을 보면 이를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군불을 지펴온 셈이다.

물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연기된 이후에도 과제는 산적해 있다.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될 경우, 일본 경제가 입는 경제적 손실은 7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수세에 몰려 있던 아베는 코로나19라는 사태로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

벚꽃스캔들·2기 내각 인사참사·카지노 스캔들…다 묻혔다

2019년 9월 개각은 아베 총리의 수난을 알리는 전환점이었다. 개각 두 달도 못돼 각료(우리나라 장관급) 2명이 연쇄 낙마한 데 이어 국회 행사를 자신의 후원자들을 대거 초대해 사적모임으로 전락시켰다는 ‘벚꽃스캔들’이 터졌다. 아베 내각이 주요 성장정책으로 내세운 통합리조트(IR, 카지노와 호텔 등이 있는 대규모 여가시설)개발 사업과 관련해 현직 여당 의원이 중국 기업이 제공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체포됐다.

여기에 더해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코로나19 대응을 놓고 벌어진 ‘촌극’은 아베 내각의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국민의 의심을 키웠다. 승객들을 선내 2주 격리하겠다는 ‘미즈기와’(水際·적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차단하겠다는 것) 대책이 오히려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늘렸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아시아 대륙을 넘어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으로 퍼지면서다. 아베 정권의 무능과 비도덕성, 안이한 책임의식에 대한 ‘집중포화’는 사라지고 여론은 온통 코로나19 이슈로 뒤덮였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외출·집회 자제와 휴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에 대한 사용 제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긴급조치’ 선포를 할 수 있는 ‘특별조치법’ 개정은 이같은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정부가, 그것도 아베 정권이 가지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컸지만 애초에 특별조치법 자체가 민주당 정권 당시 제정된 법안인 만큼 야당으로서도 반대 명분이 크지 않았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라는 인식 아래 법안은 지난 13일 통과됐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5일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을 선언했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접어든 만큼 늦은 조치였지만 여론은 ‘늦게나마 잘했다’는 평이 압도적이었다. 내각 지지율이 30% 후반까지 떨어졌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국내 여론이 악화하자 ‘한국 때리기’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이같은 흐름은 ‘숫자’로 나타난다. 산케이 신문·FNN이 22~23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41.3%로 한 달 전보다 5.1%포인트 상승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아베 내각 지지율
◇자민당 총선 염두에 둔 1년 연기…과제는 ‘산적’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은 1년 연기된 배경을 놓고서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 끝난다. 아베 총리로서 1년 연기는 올림픽·패럴림픽을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3선 연임 제한 규정 탓에 아베 자신이 총재가 될 수는 없지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포스트 아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4선을 노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는 올림픽·패럴림픽이 연기된 만큼 일본 경제가 짊어지는 부담은 커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일본이 올림픽을 추진할 때부터 일본 내에서는 경제적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데이터뱅크의 2019년 조사에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기업 실적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기업들은 15.0%에 불과하다. “영향이 없다”가 56.1%로 절반 이상이었고 오히려 “마이너스다”라고 말한 기업도 10.5%에 달했다. 도쿄올림픽으로 인한 교통 혼잡 등에 대한 우려도 컸다.

이런 상황에서 당초 1조 3500억엔으로 설정했던 예산은 이미 3조엔(회계검사원)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대회가 1년 또 연장되면 추가 예산 소요와 이에 따른 경제적 악영향이 불가피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기장을 취소하고 대회 관계자가 머무는 숙박비에 대한 보전, 직원 인건비 등 3000억엔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자신의 정치 인생에 ‘화룡정점’을 찍으려는 아베 총리의 야심이 일본국민들에게는 고스란히 “저주받은 올림픽”(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돌아왔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닛케이는 “애초에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기장을 지어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을 모이는 올림픽이라는 행사는 시대에 흐름에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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