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호의 PICK]로맨스·재난·짬뽕극, 허무맹랑에 열광하는 당신

극단 신세계 신작 '사랑의 오로라'
작위적인 설정에 온갖 장르 총집합
과장된 클리셰에 황당한 극 전개 보여
'재밌으면 그만' 대중적 취향 꼬집어
  • 등록 2020-12-22 오전 6:00:00

    수정 2020-12-22 오전 6:00:00

극단 신세계 연극 ‘사랑의 오로라’ 콘셉트 이미지(사진=극단 신세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발표하는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온 극단 신세계가 연말을 맞아 또 한 편의 신작을 들고 관객을 찾아왔다.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 여행자극장에서 개막한 ‘사랑의 오로라’다.

극단 신세계의 작품을 접한 적 있다면 이번에는 어떤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성매매의 역사를 다룬 ‘공주들 2020’, 장애인 특수학교 찬반 토론회로 한국 사회를 풍자한 ‘생활풍경’ 등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오로라’는 앞선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극단 신세계가 2015년 ‘두근두근 내 사랑’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상업무지(無知)컬’이기 때문이다. 극단 표현을 따르자면 “올 연말, 코로나19로 지친 당신에게 웃음과 위로를 선사할 작품”, 곧 흥행을 겨냥해 만든 ‘상업극’이다.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국에 입사한 막내 PD 로라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온 로라는 어떤 시련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청춘이다. 까칠한 주연 여배우 세라에게 찍혀 힘든 날들이 이어지지만, 7년 지기 ‘절친’ 찬혁과 대학 시절 짝사랑 상대이자 지금은 방송국 선배 PD인 민준이 있어 힘을 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같다면 당연하다. 상업극을 표방한 ‘사랑의 오로라’는 대중이 좋아하는 다양한 장르의 클리셰를 하나로 모아서 무대 위에 선보이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로맨스, 코미디, 메디컬, 범죄, 재난, 사극, 액션, 서바이벌, 좀비, 판타지 등의 드라마·영화에서 봤을 법한 설정과 장면들이 막무가내로 펼쳐지며 허를 찌르는 극 전개를 보여준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춤과 노래는 극단 신세계 작품답지 않은 웃음까지 더한다.

물론 마냥 유쾌한 웃음은 아니다. 작품은 대중이 좋아하는 장르가 사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작위적인 설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웃음 또한 황당한 웃음에 가깝다. 극단 신세계는 이번 작품에 대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장르들의 특성을 모아 그 사이에서 우리가 소비하며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극을 보다 보면 ‘상업무지컬’이라는 표현이 곧 상업극, 나아가 대중의 취향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비교적 ‘순한 맛’의 극단 신세계 작품이지만 극 후반부로 가면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은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에 이어 전지전능한 신까지 등장하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장면들은 클리셰임을 알면서도 이를 재미있다는 이유로 즐기는 대중적 취향을 돌아보게 만든다. 해피엔딩인 듯 그렇지 않은 결말도 여전히 극단 신세계답다.

공연 팸플릿에 적혀 있는 연출의도는 “없음” 단 두 글자뿐이다. 웃으며 즐길 것인가, 아니면 작품을 곱씹어 볼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오는 27일까지 공연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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