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형제는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사고를 당했다. 불이 난 시간은 평일 오전 11시 10분.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시간이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일어난 사고였다. 비대면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에 대한 문제는 예상됐다. 세심하게 살피고 준비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재난지원금을 주느냐 마느냐, 모두에게 주느냐 선별 지원하느냐에 만 매달렸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한국은 가장 고통스럽고 불평등한 나라”라고 한다. 그는 수많은 강연에서 불평등과 정치 부재를 역설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자살률은 17년째 세계 1위다. 노인 자살률은 OECD국가 평균보다 무려 7~8배 높다. 높은 자살률은 소득 불평등에 기인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는 16%, 상위 10%는 66%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50%는 1.8%를 소유하는데 그쳤다. 국민 절반이 무산자나 다름없다.
우리사회 불평등은 이미 바로잡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을지 모른다. 권력과 부의 대물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땀과 노력이 아니라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고 있다. 내가 지닌 알량한 지위와 자산으로 내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우울하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희망을 기대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반면 여야는 유흥주점(룸살롱)과 콜라텍(무도장)에도 2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전국에 영업 중인 유흥 단란주점은 3만3,000개소. 대략 660억 원이 지원될 전망이다. 최근 언론은 “석 달간 600만 명이 룸살롱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형제들 엄마는 월 160만원을 벌기 위해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생활 현장을 전전했다. 그 시간 6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수 백 만원을 뿌리며 환호했다. 단순화하자면 라면 47억 원, 유흥 단란주점 660억 원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예산 편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면 형제’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라면 형제’라고 하는 순간, 그들이 직면했을 공포는 희미해진다. ‘라면 형제’는 무용담이 아니다. 인천 화재 사건은 우리사회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뼈아프게 묻고 있다.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은 우리사회가 정상이냐고 묻는 절박한 신호다.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약자와 연대를 소홀히 하는 사회는 야만적이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