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늪지대에 사는 물고기의 호흡법

  • 등록 2021-01-08 오전 7:51:05

    수정 2021-01-08 오전 7:51:05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건기가 되면 물이 줄어들어 물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늪지대에 사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숨을 쉬며 살아갈까.

물고기가 처음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고생대 중반인 4억 8천만 년 전이다. 단단한 척추와 지느러미를 가져 물속에서 빠르게 헤엄칠 수 있었던 물고기는 고생대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을 차지하며 전 세계 바닷속과 민물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얕은 물이나 늪 또는 웅덩이에 살게 된 물고기들은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이 부족할 때 생존하는 법을 찾아야만 했다. 몇 억년의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 물고기들이 터득한 것은 공기로 호흡하는 법이다.

우리는 모든 물고기가 당연히 아가미로 숨을 쉬는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다양한 물고기가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 뱀장어나 망둥어는 부족한 산소를 피부호흡을 통해 공기로부터 빨아들일 수 있고 미꾸라지와 일부 메기들은 입으로 들이마신 공기에 들어 있는 산소를 소화관에서 흡수한다고 한다. 폐어는 머리 뒤에 있는 구멍으로 공기를 빨아들여 육상동물의 폐처럼 생긴 기관에서 산소를 얻는다. 물속의 산소가 줄어들어 다른 물고기들이 질식사할 때 이 물고기들은 새로운 생존 방법을 터득하고 생존하고 번성한다.

작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을 때는 세계 경제가 일거에 멈추어버리는 것 같았다. 각국의 봉쇄 조치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에 갇혀 지내게 되었고 주가 폭락으로 전 세계 시가 총액의 3분의 1이 증발했다. 공장과 사무실이 문을 닫았고 문을 닫지 않은 공장도 원자재를 구할 수 없어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렸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제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작년을 뒤돌아보면 우리가 생각보다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록다운으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기는 했지만 미국 시총 상위 50개 기업 중 45개 기업이 작년 3분기까지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상위 12개 기업의 성과도 나쁘지 않다. 3개 기업을 제외한 9개 기업이 3분기까지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 중이다. 미국 증시의 3대 지표인 다우, S&P, 나스닥 모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코스피 역시 사상 최고치인 2,873으로 2020년을 마무리했다.

여행이나 항공업계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마존이나 테슬라 등 많은 기술기업들은 사상 유례없는 실적을 내고 있다. 미래를 대비한 투자 지표도 나쁘지 않다. 작년 3분기까지 국내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전년 대비 8000억 원 증가했다. 글로벌 인수합병 거래 규모는 30% 이상 위축되었지만 3분기부터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의 인수합병은 3분기까지 전년대비 4000억 원 증가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유전자 공학과 합성 생물학으로 코로나 발생 1년도 되지 않아 백신이 개발되었고 이미 전 세계 1200만 명 이상이 백신 접종을 받았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위기는 기회를 낳는 법이다.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기업들은 화상회의 앱으로 일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마트와 식당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서비스로 대안을 찾았다. 챗봇과 인공지능이 콜센터를 대체하고 영화사들은 극장 대신 스트리밍으로 개봉영화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물류기업들은 창고 자동화와 로봇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원격 교육과 원격 진료가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늪지대에서 산소 부족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린 물고기가 공기로 호흡하는 법을 배우면서 물을 떠나 육상생물로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새로운 생존 기술을 터득한 기업들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갈지 기대와 함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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