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패·성추행 막을 도리 없다"…`나홀로 장사` 두려운 女사장님들

신림동 강간 미수사건 이후 여성들 불안감 커져
미용실·주점 등 여성 1인업주들 범죄 위험에 노출
여성들, 폭력 범죄 피해위험 남성보다 1.2배 높아
"안전장비 지원 예산 확충 등 사회 인식 바뀌어야"
  • 등록 2019-06-16 오후 1:42:12

    수정 2019-06-17 오전 8:33:37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낯선 남성이 가위를 들고 행패를 부리는 데도 뒷공간에 숨는 것 말고 따로 대처할 방법이 없었어요.”

서울 마포구에서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여사장 김모(36)씨. 최근 김씨는 미용실에 홀로 있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겪었다. 한 낯선 남성이 미용실에 갑자기 들어와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낯선 남성이 가위 등 미용 도구를 들고 미용실 안에서 난동을 부렸다. 출입문 쪽에 남성이 서 있어 밖으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며 “가게 뒤편에 빠르게 숨어 겨우 큰일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남성은 1분 가량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제 발로 가게를 나갔다. 그러나 김씨는 그 사건 이후 “남성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그 사건이 떠오른다”며 토로했다.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집에 침입하려 한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늦은 밤까지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 업주들의 불안감은 남다르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홀로 일하는 여성 업주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왁싱샵 살인사건` 2년 지났지만 여성대상 범죄 여전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편의점에서 50대 한 남성이 주먹과 등산 스틱, 대걸레 등으로 일하던 50대 여성을 폭행했다. 경찰은 양씨를 특수 폭행 혐의로 구속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른바 왁싱샵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2년 가량 지났지만 홀로 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왁싱샵 살인사건은 2017년 7월 5일 직업이 없은 30대 남성이 홀로 일하던 왁싱샵 주인을 강간하려다 실패해 살인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범죄를 공론화하자’는 여성단체의 시위가 잇따랐다. 또 해당 남성이 피해자의 왁싱샵을 홍보한 인기 BJ의 영상을 보며 범행 대상으로 특정하면서 인터넷 방송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주점을 홀로 운영하는 이모(59·여)씨는 “가게에 남자 손님들로 이뤄진 테이블이 하나만 남았을 때 해당 테이블의 손님이 말을 걸어오면 출입문 쪽으로 은근슬쩍 몸을 옮긴다”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늘 도망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혼자 있다 보면 중년 남성 손님들이 ‘술 한 잔 같이하자’, ‘몸매가 좋다’ 등의 말을 건넨다”며 “그럴 때마다 치가 떨리지만 장사해야 하기 때문에 참는다. 큰소리를 쳤다가 더 큰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성희롱 등 경험담 게시도

여성이 홀로 운영하는 가게는 대부분 규모가 영세해 안전 장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여성 업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피부마사지샵을 홀로 운영하는 강모씨(41·여)는 “아이가 있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건물 지하에 가게를 얻게 됐다”며 “비상구도 없는데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범죄나 화재 등 위험에 취약하다”고 전했다. 이어 “약 20년간 일을 해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렵다”며 “될 수 있으면 일찍 가게문을 닫고 들어가지만 밤 늦게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홀로 있어서 무섭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이후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영업 도중 위협을 느꼈다`는 여성 업주들의 경험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낯선 남자가 가게 앞을 오랫동안 배회하면서 눈치를 살피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자 도망갔다`거나 `가게에 혼자 있으면 손님들이 이상한 말로 성희롱을 하고 간다` 등의 글이 주로 게시됐다.

여성 업주들 “폭력과 성폭력 가장 두렵다”

실제 업주가 여성이면 폭력 범죄 피해를 볼 위험도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국범죄피해조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년 발표)에 따르면 사업주가 여성이면 폭력 범죄 피해 위험이 남성보다 1.2배 높았다. 경찰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16~2018년 편의점 강도 사건 총 269건을 분석한 자료를 살펴봐도 여성종업원이 혼자 근무하는 편의점에서 발생한 사건이 전체의 40.5%(109건)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59.5%, 160건)는 남성종업원이거나 근무자가 2명 이상인 편의점이었다.

또 여성 업주들은 범죄 중에서도 폭력과 성폭력을 가장 두려워했다. 여성 업주가 홀로 운영하는 사업체는 폭력범죄에 대한 두려움 수치가 1.96점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의 1.87점보다 높았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 수치 또한 여성 단독 업주일 때 1.63점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1.56점)보다 더 높았다. 재산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성별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서울시, 일부 자치구 업소에 한해 무상지원벨 지원

상황이 이렇자 지방자치단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7일 여성이 홀로 운영하는 업소에 경찰서와 구청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 연결이 가능한 무선 비상벨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원 적용 대상이 관악·양천구에 있는 50개소에 불과하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홀로 일하는 여성 업주들의 두려움을 덜기 위해서라도 지자체에서 안전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더욱 확충할 필요가 있다”면서 “범죄 취약지역 곳곳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범죄 예방 조치를 통해 여성이 혼자 일해도 위험하지 않은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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