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시장 개방과 체제 개편 압력을 받아온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서유럽 등 자본주의 선배들이 속속 금융위기 파고에 휩쓸리는 모습에 당혹스럽다. 시장 체제에 더 깊숙히 발을 들인 국가일수록 상처가 더 크고 깊다.
◇ 헝가리에서 루마니아까지..줄줄이 `힘들다!`
헝가리는 포린트화 급락과 증시 폭락 이후 IMF에 도움을 요청했다. 시장의 패닉을 완화시키기 위한 유동성 공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동유럽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IMF와의 회담에 나섰다.
CNBC는 15일(현지시각) 시장 전문가들을 인용해, 헝가리가 처한 상황은 `한 국가가 외화 자금조달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어떤 사단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헝가리 모기지 중 60%가 스위스 프랑과 유로 등 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헝가리 개인과 기업들이 지고 있는 부채 중 외화에 페그된 규모가 총 623억달러를 웃돈다.
헝가리 논객인 존 하바스는 "정부가 당면한 실제 문제들을 처리할 건설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헝가리는 현재 금융위기에 대한 유럽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갑부들의 여름 휴가지로 주목을 받아 온 불가리아는 높은 인플레로 허리가 휜다. 2007년 유럽연합(EU)에 합류한 불가리아의 연 물가상승률은 11%에 달해, 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옆집 루마니아에서는 증시 폭락으로 인해 갑부들의 패닉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고. 전 소비에트 연방 중 최고 수준인 루마니아의 경제 성장에서 부를 축적해 온 자수성가형 거부들은 최근 몇 주간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을 보고 있다.
부쿠레슈티 주식시장이 지난 2개월간 사상 최대 규모인 144억달러를 날려버렸기 때문. 이로 인해 전체 시장이 패닉에 빠져들면서, 당국은 지난주에만 두 번이나 시장의 거래를 중단시킨 바 있다.
◇ 폴란드, `우린 괜찮아`..위기를 기회로
반면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등의 상황은 긍정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틈타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자신감을 축적하고 있다. 체코와 반대로 폴란드는 유로화 편입 일정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 경제는 매우 안정적이며 금융권도 매우 강하다"며 "금융사들은 잘 운영되고 있고 강한 규제 하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모기지 디폴트율이 1.1%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폴란드의 독립 애널리스트인 리자드 페트루는 "금융위기로 조금쯤은 고통을 받겠고 성장도 둔화될 것이나, 여전히 4%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슬로바키아 등도 폴란드와 유사하게 펀더멘털상 건전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화가 덜 진행된 유럽 변방국들도 금융위기는 `옆 동네 불`이다. 이들 국가들은 외국 원조에 의해 성장했고 상대적으로 시장의 영향력이 낮기 때문에, 충격의 강도도 미미하다.
동유럽인들은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민영화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을 압박했던 서구 주요국들이 앞다퉈 사회주의식 처방을 내놓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젤리코 카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증권거래소 대변인은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더이상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