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30)씨의 최근 주요 흡연 구역은 ‘집 안’이다. 거주 중인 아파트가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면서 담배를 밖에서 피우는 게 눈치가 보이고 다른 주민들과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 집 앞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다 다른 주민에게 한 소리를 들었었다는 김씨는 이제 그냥 집에서 흡연을 하는게 편하다고 말했다.
금연아파트를 비롯해 흡연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문화가 퍼지면서 흡연자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층간 흡연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층간흡연이 범죄로 이어지는 사회 문제인 만큼 흡연권을 배려하는 금연 정책과 동시에 실내 흡연을 예방할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3일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동주택 간접흡연 피해 민원은 지난 2019년 2만 2000건에서 2023년 4만 1000건으로 4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흡연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성인 흡연자 비율은 17.7%(2022년 기준)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연아파트’(공동주택 금연구역)다. 이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공동주택의 주민 과반 이상이 동의하면 해당 주거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도입 초기(2017년) 158곳에 불과했던 금연아파트의 숫자는 지난해 말 3046곳으로 20배가량 급증했다.
이러한 확산세에 비해 흡연 부스를 설치해달라는 흡연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주민들이 자기 주거지 근처에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데 반대하는 ‘님비’ 현상이 극심하다”며 “이 때문에 금연아파트 지정 시에도 흡연부스 설치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유지라서 강제할 순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
문제는 늘어나는 층간흡연이 이웃 간 범죄를 유발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의 자택에서 흡연하던 중 옆집의 항의에 격분해 흉기를 들고 살해하려던 남성에게 5년형이 내려졌다. 올해 2월엔 남양주 한 금연아파트에서 흡연하는 주민에게 욕설을 내뱉고 멱살을 잡은 30대 남성에게 벌금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금연아파트에서 만난 이모(25)씨는 “옆집 화장실에서 타고 오는 담배 냄새에 몇 번이나 쪽지를 붙여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결국 직접 찾아가서 항의하니 문을 발로 차고 도망가는 식으로 보복하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층간흡연 갈등을 막을 장치는 사실상 없다. 관련 법에는 ‘층간흡연 발생 시 관리자가 흡연자에게 실내 흡연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관악구의 한 금연아파트 관리인은 “금연아파트 시행 이후 화장실 담배 냄새 민원이 확실히 더 늘었다”면서도 “민원이 들어와도 담배 냄새가 정확히 어디서 온 건지 모르고 알아도 막을 방안이 딱히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실내흡연을 막을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금연 정책 시 흡연자의 권리를 함께 보장해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금연 정책은 소수인 흡연자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층간흡연으로 범죄가 반복된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일정 금연 구역마다 흡연부스를 할당하는 등 금연권과 흡연권을 동시에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아람 변호사(법무법인 SC)는 “전 입주민의 실내흡연 금지 규정을 허용하는 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해 실내흡연을 막을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