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박호식기자] 벤처기업을 금융상품에 비교하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기업"이다.
최근 몇년간 국내 벤처기업의 흥망성쇠는 이같은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지난 90년대말 벤처산업과 코스닥시장의 급팽창을 "희망"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 희망속에 상당한 거품이 있었다는 현실과 맞닥뜨리며 희망은 상당부분 "절망"으로 바뀐 상황이다. 2002년에는 절망의 끝자락으로, 가장납입, 분식회계, 주가조작, 대란설 등이 벤처업계와 투자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긴 해로 기록될 법하다.
새롬기술은 그 희망, 거품 그리고 절망을 고스란히 보여준 대표적인 벤처 1세대기업이다. 때문에 올해 새롬기술의 "경영권 분쟁과 경영체제 변화"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새롬기술(35610)은 93년 오상수 전 사장을 중심으로 설립돼 팩스맨, PC통신, 새롬데이터맨 등으로 주목받았고 지난 99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해 황제주에 등극했다. 증시활황과 함께 주식시장에서 수천억원대의 자금을 조달했고 2000년 전후 선보인 인터넷전화서비스 다이얼패드는 통신시장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새롬기술의 주가는 2000년 2월18일 28만2000원까지 치솟았다. 액면가 5000원으로 환산하면 주당 282만원이다. 시가총액은 4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새롬기술은 급격한 상승세 만큼이나 곤두박칠치는 기울기도 매우 가파랐다.
다이얼패드는 신선한 등장과 달리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환경이 미비했고 무료전화에 투입되는 비용만큼 수익이 받쳐주지 못했다. 수익모델에 실패한 것이다. 새롬기술은 2년간 2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투입하고도 활로를 찾지 못했다.
1998년 당기순익 7억9600원, 1999년 5억3100만원, 2000년 233억9000만원 적자, 2001년 995억6700만원 적자...새롬기술의 초라한 실적이다. 여기에 자회사들의 사업도 악화되며 새롬기술은 사면초가에 처했다.
급기야 올들어 새롬기술은 "경영권분쟁과 오상수 사장의 구속"으로 곪아있던 상처가 터졌다. 지난해 사재출연에 이어 대표이사를 사임했던 오 전사장은 올 6월 다시 대표이사에 복귀하며 새롬기술 회생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홍기태 새롬벤처투자 사장의 M&A로 경영권분쟁에 휩싸였다. 설상가상 오 전사장은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오상수 신화는 이카루스 신화처럼 녹아내리고 만다. 새롬기술 주가는 5000원 밑으로(12월27일 종가) 떨어졌다.
결국 12월13일 주주총회에서 홍기태 신임 사장을 비롯해 새로운 경영체제가 들어서면서 재기를 모색중이다. 홍 사장은 이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던 포털사이트인 프리챌과 자회사 드림챌 인수를 발표했다.
경쟁력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포탈로 새롬기술의 방향을 설정하고 회사가 보유한 17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동원해 적극적인 사업다각화에 나서기로 했다.
비단 새롬기술만이 아니라 국내 벤처업계는 짧은기간 수많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양산했다. 올해만해도 패스21사건을 시작으로 RF로직 유통사기까지 수많은 기업과 대주주, 경영진이 불공정행위에 연루됐다. 업계 전체로도 IT경기 침체로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희망은 또 다시 싹트고 있다. 내년 IT경기 회복세에 대한 기대감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고 다음 등 인터넷관련업체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 일각에서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코스닥시장 거품에 기대 단기차익을 노린 경영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창의적인 경영과 단기적인 경영성과에 집착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 벤처업계는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이것이 새롬기술을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