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RP에 은행채 포함?..`깊어지는 고민`

25조 은행채 만기 금융시장 뇌관
RP대상 포함시 실효보다 파급효과 더 기대
전문가, "연착륙 돕는 수준에 그쳐야"
  • 등록 2008-10-22 오전 11:59:11

    수정 2008-10-22 오후 2:08:23

[이데일리 권소현 정원석기자]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 증권을 은행채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원칙론적으로는 형평성이나 도덕적 해이 차원에서 봤을 때 한은의 은행채 매입이 맞지 않지만, 연말 25조원 규모의 은행채 만기를 앞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 먼저 그동안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한계로 여겨왔던 선을 무너뜨리고 적극 시장 구하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 상태에서 관건은 은행채 만기가 시스템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이냐다. 한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원칙론 VS 현실론

한은의 은행채 매입안은 금융위원회의 아이디어다. 최근 은행채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금리는 고공비행인데 발행은 쉽지 않고 거래도 되지 않자 한은에 이같은 방안을 타진해온 것.

한국은행은 은행채 직매입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고, RP 대상 증권으로 포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으로 자초한 상황을 왜 한은이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하냐는 비판이 높지만,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25조원 규모의 은행채가 금융시장 뇌관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은도 딱 잘라 거절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의 금융위기 극복방안으로, 은행들이 중소기업지원과 건설사 유동성 지원에 나서야할 판이어서 자금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하소연이다. 자금조달은 안되는데 빌려주거나 만기 연장해줘야 할 돈은 많아져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것. 

현재 한은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과연 현재 상황이 어느정도 심각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채 차환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은행채 대란이 일어날 경우 자칫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유동성 비율 완화가 직방

일단 은행권은 원화유동성 비율을 완화하는 것이 단시일 내에 자금경색을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한은이 RP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시킬 경우 은행권 자금경색은 생각보다 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한은이 RP 대상 증권에 은행채를 포함해도 실제 매입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은행은 RP 대상 증권으로 대부분 국고채를 갖고 있으며 현재 잔액은 10조원 수준이다. RP 대상증권을 확보하기 위해 국고채 직매입할 때 5000억원 규모로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해 11월 스왑대란이 발생했을 때 이례적으로 1조5000억원을 직매입키로 했던 것에 비춰봤을 때 은행채를 매입한다 해도 그 이상은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RP 대상증권이 될 경우 금융권에서 은행채에 대한 투자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RP 대상에 은행채가 포함되면 일단 은행채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은행채 금리가 높은데다 증권사 등 다른 금융기관들이 은행채를 담보로 한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어 은행채 수요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은행채 시장이 급속도로 안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 연착륙 돕는 수준에 그쳐야

따라서 한은이 RP 대상증권에 은행채를 포함시키되, 은행에게 돈을 퍼주는 식은 안된다는 지적이 높다.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는 만큼 일시적으로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원하고 사후 대책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매입 가격을 낮게 한다던지 등의 방법으로 은행의 경영실패에 대한 패널티를 줘야 한다"며 "항구적인 지원이 아니라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현재 자금경색을 극복하고 소프트 랜딩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필규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자산을 급격하게 축소시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은행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동안까지 자금을 지원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후관리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은행이 은행채 만기상환할 자금이 없다면 다른 국가처럼 자본투입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모럴 헤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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