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춘향' 안숙선 명창, 가슴절절 마지막 "쑥대머리"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와 눈물의 작별
15년간 주인공, 올해 마지막 무대
30명 제자들과 '예술혼' 불태워
  • 등록 2024-12-29 오후 6:30:00

    수정 2024-12-29 오후 7:14:24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가 열린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안숙선(75) 명창은 국립극장이 준비한 감사패를 받자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가운데)이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왼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나즈막한 그의 한 마디에 이날 함께 무대에 등장한 안 명창의 제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한 관객은 “선생님 화이팅”이라며 안 명창의 마지막 무대를 응원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꾼’ 안 명창이 15년간 이어온 ‘송년판소리’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안 명창은 지난 2010년부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의 주인공으로 국립극장의 연말 무대를 빛내왔다. 안 명창의 대표 브랜드 공연인 셈이다. ‘송년판소리’는 내년에도 계속되지만, 안 명창이 주인공인 ‘송년판소리’는 올해가 끝이다.

이날 안 명창에게 수여한 감사패에는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한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오롯이 겪어내는 시간을 의미한다”며 “판소리와 창극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노력해온 안숙선 명창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가운데)이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왼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감사패를 받은 안 명창은 단가 ‘벗님가’로 화답했다. 무대에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였던 안 명창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 명인이 북 장단을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구성진 소리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인생의 희로애락 일장춘몽이 그 아닌가 (중략) 세상 풍진이 남이로구나. 이렁성 지내어 보세”라는 노랫말이 안 명창의 음악 인생과 만나 감동을 전했다. 이어 안 명창은 제자들과 민요 ‘동백타령’과 ‘진도아리랑’을 같이 불렀다. 안 명창은 한 손으로 부채를 들고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변함없는 예술혼을 보여줬다.

안 명창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소리꾼이자 배우로 수백 편의 창극에서 활약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국립창극단 단장 및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창극 발전에도 기여했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단가 ‘벗님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안 명창의 ‘송년판소리’는 끝났지만 안 명창의 소리는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 이날 공연은 안 명창의 제자 30명이 출연해 안 명창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는 무대로 꾸며졌다.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자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유수정은 국립창극단 출신 남상일과 함께 ‘춘향가’ 중 ‘춘향모 어사 상봉’ 대목을 재치 넘치는 무대로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안 명창의 손녀로 국악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은우 양은 소리꾼 조정규와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으로 할머니의 뒤를 이을 소리 실력을 뽐냈다. 전 국립창극단 단원이자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교수인 김지숙, 스타 소리꾼이자 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 중인 박애리, 그리고 정미정, 서정금, 김미진, 김수인, 이나경 등 국립창극단 단원들도 무대를 함께 빛냈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민요 ‘동백타령’과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안 명창은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할 당시 춘향 역을 많이 맡아서 ‘영원한 춘향’으로 불린다. 이날 공연에선 안 명창이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부르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제작한 영상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1월 말 안 명창의 자택에서 이틀 동안 촬영한 영상이다. 비록 영상이지만 분홍빛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안 명창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원한 춘향’이었다.

이날 공연의 사회를 맡은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국립창극단에는 안숙선 선생의 그림자가 곳곳에 남아 있다”며 “선생이 일구어놓은 판소리와 창극이 더욱 발전하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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