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2일 발표된 제 7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에 대한 니시노 쥰야 게이로대학 교수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비영리 언론단체인 겐론(言論)NPO는 한·일 관계의 개선과 복원을 위해서는 양국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2013년부터 여론조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화해·평화 재단’ 해산, 초계기 조사,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명령 판결 등 양국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에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날 발표내용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껴졌던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제3차 한류 붐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탄소년단(BTS)과 트와이스에 대한 일본 팬들의 열렬한 반응에 가려졌던 일본의 ‘혼네’(本音)가 이번 여과없이 드러났다.
日, “한국에 호감” 응답비율 역대 최저
|
‘한·일 관계가 나쁘다’(한국 66.1%, 일본 63.5%)라는 공통된 인식에도 상대국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는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것에 대해 니시노 교수는 “한국은 역사문제와 별개로 한·일 문화 교류 측의 측면에서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외교·정치적 이슈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에 한국인들은 불과 18.7%만이 “나빠지고 있다”고 말한 반면 일본인 응답자는 33.8%나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전 응답률은 13.5%로 동일했다.
일본 학자들은 ‘한국이 일본을 홀대하고 있다’라는 인식이 이같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학 준교수는 “지금의 한·일 갈등은 이전까지의 갈등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며 “이전에는 특정 정치가의 망언이나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국지적인 이슈를 놓고 양측이 충돌했다면 지금은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큰 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을 명시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다. 일본은 이번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협정에 따른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지만 한국 정부는 ‘3권 분립’에 따라 행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며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일본인들은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보다는 이를 다루는 방식과 행동에 반감을 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아베 정부는 사회에 ‘사죄 피로론’을 효과적으로 확산시켜 정치적인 효과를 노렸고 이는 상당한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단 설명이다.
실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해 일본 언론 대부분은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국민 여론은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일본 TBS방송이 지난 6~7일 18세 이상 11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번 규제에 대해 “타당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58%에 달했다. “타당하지 않다”는 답변(24%)의 두 배를 넘어섰다.
마지막 보루였던 민간교류도 경색되나
그나마 희망 섞인 부분이라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경직된 양국 관계를 넘어 경제적·안보적 실리를 추구하고 문화적 공감을 이루는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6~8일 열린 방탄소년단(BTS) 일본 콘서트장의 열기는 경색된 한·일 관계에도 변함없이 뜨거웠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변화 역시 양국의 경제보복이 심화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수록 퇴색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한류 스타가 속한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케이팝을 소비하는 층은 정치, 경제, 문화를 별개의 영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잡혀 있는 공연, 앨범 판매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광범위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는 제약이 있을 수 있다. 대규모 콘서트나 앨범 홍보활동이 어려워지고 방송을 주요 홍보 수단으로 잡은 아티스트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뒤집힐 수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0~40%대를 유지하던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3년간 8.6%포인트 감소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미 일본제품 불매 운동, 일본여행 취소 운동 등이 대중들의 호응을 받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아베 마코토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아시아경제연구소 지역연구센터·동아시아 연구그룹장은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인들은 (연령에 관계없이) 역사문제를 중시하고 있다”며 “만약 한국인의 역사감정을 건드린다면 일본에 대해 쌓아왔던 긍정적 이미지가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적·외교적 갈등에서도 민간 교류 속에서 꾸준히 개선되던 국민감정이 악화되면 사태를 더욱 심각해지고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밀접한 한·일 관계의 특성상, 그 피해는 양국 모두의 몫이다.
한국기업의 일본 오사카 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일본인 A씨는 “콕 집어 무슨 일이 생겼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한국, 일본도 서로를 종기(腫れ物) 대하듯 조심스러워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민간 교류는 경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