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태선기자] 과유불급. 적당하게 좋다는 건 만고의 진리입니다. 과하면 "독"이 되는 건 자본시장에서도 마찬가지같습니다. 최근 살아나고 있는 코스닥시장에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벤처기업을 "잡아먹는"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려울때 조건도 따져보지 않고 넙죽 받았던 투자금이 이제 주식으로 대량 전환되면서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죽이며 전환사채 해결에 나선 벤처업체들의 상황을 이데일리 산업부 정태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주식시장에 햇볕이 들기 시작하면서 벤처업계가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벤처기업들에 투자했다가 "아사" 직전의 궁지에 몰렸던 투자자들도 한결 가벼운 모습입니다.
오랬동안 떼였다고 생각했던 투자금을 이제는 톡톡한 이자를 쳐서 돌려 받게 됐으니 창업투자사등은 앞날을 내다본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하는 분위깁니다. 조용히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표정관리에 나선 모습도 눈에 띕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도움을 받은 벤처기업들중 일부는 오히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투자금을 받을때 대신 줬던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회사 주가가 오를수록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전환사채를 전환, 주식 물량이 확 늘어나고 이 때문에 최대주주 자리까지 내주는 곤욕을 치릅니다.
언제 시장의 매물이 될지 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또 전환사채를 감당할 여력을 키웠더라도 "왜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았을까. 행사가 조건을 좀 더 유리하게 협상했어야만 했는데"라며 땅을 치고 후회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신종 고리사채의 폐해를 보는 느낌입니다.
음반업계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의 함정에 걸려들었습니다. 코스닥시장의 오름세와 함께 예당의 주가가 상승할때마다 전환사채의 주식전환 청구와 신주인수권행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채 상환을 위해 다시 전환사채를 싼 가격으로 발행, 늘어나는 주식수 때문에 주가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리아 시큐러티 디포지터리는 예당에 55억원규모의 해외신주인수권을 행사했는데, 이 때문에 예당은 전체주식의 21.6%(155만5200주)규모의 신주를 발행해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보유한 70억원 규모의 무보증전환사채가 주식으로 곧 전환 청구됩니다.
해외신주인수권과 무보증전환사채가 주식으로 바뀌면 현재 물량의 33%가 쏟아지는 셈입니다.
물론 행사가격은 최근 주가의 절반수준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2배 수익을 올리는 대박게임이지만 회사는 그렇지 못합니다. 예당은 신주인수권에 붙은 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앞으로 200만주규모의 유상증자를 또 해야하는 처집니다.
게임업체 써니YNK도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지난 2001년 벤처기업 CBO를 담보로 확보한 자금 95억원 때문에 다량의 주식이 곧 쏠아질 태세입니다.
이중 일부는 벌써 주식으로 전환, 기술신보에게 35억원이상의 이익을 돌려줬습니다. 또 윤영석 사장은 최대주주자리를 한때 기술신보에게 내줘야만 했습니다. 투자자들의 경영권 불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맞아야 했습니다. 성장모멘텀을 맞이하고 있는 써니YNK로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코로마스펀드가 확보한 700만달러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곧 행사돼 신주가 나옵니다. 이 규모는 현재 유통주식수와 맞먹는다는군요. 특정 투자자가 이들을 한데 모으면 경영권이 곧바로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회수하는 건 당연한데 벤처기업 입장에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와는 상관없지만 최근 SK커뮤니케이션즈와 싸이월드 인수에 관여했던 IMM창투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IMM창투는 지난 3월 싸이월드의 주식 90%를 70억원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물론 장기적 투자목적을 가지고 인수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죠. 그런데 투자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싸이월드를 SK커뮤니케이션즈에 팔아치웠습니다. 장기투자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도 뒤돌아 서자마자 매각을 위한 "칼날"을 세웠던 거죠.
결과만 놓고 보면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노렸거나 SK커뮤니케이션의 대리인 역할을 한 셈이죠.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경영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익 앞에서 기업 육성은 먼 이상일 뿐입니다.
최근들어 최대주주가 변경되거나 전환사채 청구 공시를 종종 보게 됩니다. 2~3년 전 "묻지마 투자"의 광풍 속에 대규모로 발행됐던 전환사채의 만기가 올해부터 본격화되면서 빚어지는 일들입니다. 이 때문에 벤처업계는 일찍부터 "대란설"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지금도 한푼이 아쉬운 기업들은 뒷일을 생각치 않고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해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아 메웁니다. 하지만 점점 불어나는 주식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버거워 하는 모습입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벤처기업들한테는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또다른 고리사채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