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세계 각국은 앞다퉈 에너지 확보와 관리에 나섰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이 그 선봉에 섰다. 77년 에너지부 산하에 에너지정보청(EIA)를 설립해 미국 전역의 에너지 수급상황을 파악하고 분석과 연구를 맡겼다.
EIA는 에너지 시장에 관한 각종 정보와 예상치를 발표할 뿐만 아니라 정책제안, 시장 효율화 방안,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결과도 내놓는다.
이 가운데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자주 또 유심히 지켜보는 지표가 바로 에너지청이 발표하는 `주간 원유재고`다. 원유 재고 자체는 전주대비 단순한 증감을 표시하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산유국들의 증산 및 감산, 지정학적 변수 등과 함께 유가 움직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중 하나다.
유가는 관련기업 실적은 물론 소비와 인플레이션을 거쳐 성장과 금리정책에 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연관효과가 크다. 특히 지난해처럼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경우 시장과 경제에 파급되는 유가의 파장은 더욱 커지고, 원유재고 동향은 간과해서는 안될 핵심변수로 자리잡게 된다.
◇매주 수요일 나오는 `EIA-803`
▲ 에너지 위기때 미국 주유소 | |
미국내 모든 석유회사들에게 보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EIA는 석유 취급량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각 제품별, 지역별로 전체의 90%를 반영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보고대상 기업을 지정한다.
선정된 석유회사들은 미국의 50개주와 콜롬비아 특별지구까지 포함, 미국 전역에 대한 한주간 수치를 그 다음주 월요일 오후 5시까지 보고해야 한다.
EIA는 이를 취합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에 전주 자료를 발표한다. 이날 나오는 자료는 `주간 정유 및 정제사 리포트 `(EIA-800), `주간 벌크 선적 리포트`(EIA-801), `주간 생산 파이프라인 리포트`(EIA-802), `주간 원유재고 리포트`(EIA-803), `주간 수입 리포트`(EIA-804), `주간 총 선적 리포트`(EIA-805) 등 6가지.
이중 원유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803번 보고서인 주간 원유재고다. 말 그대로 앞으로 쓸 수 있는 원유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 원유재고에는 미국내 저장돼 있는 원유 뿐만 아니라 정유사나 파이프라인, 임대 탱크, 정유사로 송유중인 원유 가운데 세관신고를 마친 분량 등이 모두 포함된다.
각 보고서의 보고대상이 약간씩은 다른데 원유재고의 경우 1000배럴 이상의 원유를 보유하고 있거나 다루는 업체로 구성된다.
◇원유재고 2004년 바닥 찍고 증가
EIA-803 보고서에는 종류별로 크게 13개 항목의 재고량이 담겨있다. 이중 차량용 연료, 첨가제, 증류연료유, 프로판 등은 다시 하위 항목으로 세분화돼 있다.
가장 관심이 많은 항목은 원유와 휘발유, 정제유 재고다. 원유를 증류해서 정제하는 과정에서 온도에 따라 여러 종류의 석유제품이 생산되는데(오른쪽 그림 참조), 소비자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이 바로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휘발유와 난방 등에 사용되는 정제유이기 때문이다. 물가와 소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항목들이기도 하다.
원유 재고가 유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은 2000년대 초반. 90년 7월 3억9000만 배럴까지 증가했던 원유재고가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2000년 들어서는 3억 배럴 밑으로 떨어졌다. 그해 9월 2억9000만 배럴도 밑돌면서 76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자 유가는 10년래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특히 난방유 부족사태가 심각했다. 클린턴 정부는 96년 12월과 2000년 1~2월 난방유 대란을 겪고 나자 2000년 7월10일 북동 난방유 저장고까지 건설했다.
이후에도 원유 재고는 증가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2004년 1월 사상 최저치인 2억6300만배럴대까지 떨어졌다. 원유재고는 2004년 9월 이후 최저수준에서 탈피해 꾸준히 증가, 2006년에는 평균 3억3000만배럴 수준을 유지했다.
◇단기 요인..`충분한가` 판단에 따라 유가 움직여
유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다양하다. 산유국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분쟁,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움직임과 관계자들의 발언, 태풍 등 자연재해와 겨울철 날씨 등이 변수로 꼽힌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철저하게 공급과 수요의 수급원칙이 지배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공급과 수요 중 어느 한쪽에 조금이라도 무게가 실리면 유가는 바로 반응한다. 주간 원유재고가 유가를 움직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단기적인 영향에 그친다. 원유재고가 2억6000만 배럴대로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2004년, 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안팎이었지만 3억배럴을 웃돈 작년에 유가는 한때 배럴당 78달러에 달하는 초강세를 보였다. 재고의 절대수준은 높았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성장국가들이 에너지 블랙홀도 등장하면서 수급불안 우려를 부추겼기 때문이다.(그래프 참조)
단순히 원유재고가 `늘었다, 줄었다`가 아니라 재고가 `충분한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유가가 움직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투자심리에 영향을 준다.
7일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 주 미국 원유 재고는 3억2450만배럴로 40만배럴 감소했다. 4주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3월물 가격은 전일비 1.17달러(2%) 하락한 배럴당 57.71달러를 기록했다. 원유재고가 충분하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주간 원유재고는 매주 수요일 미국 에너지청 홈페이지(http://tonto.eia.doe.gov/dnav/pet/pet_stoc_wstk_dcu_nus_w.ht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