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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하모(33)씨는 올해 집안 내부도 둘러보지 못한 채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계약했다. 부산에서 급히 서울로 발령받은 하씨는 중개사와 둘러본 집 5곳 중 2곳만 겨우 내부를 살폈다. 하씨는 “전 세입자분들이 집을 안 보여줘 하는 수 없이 건물 밖에서 채광만 확인한 뒤에 사진만 믿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28)씨도 내부를 못 보고 자취방을 계약했다. 박씨는 “저녁에 집을 보러갔는데, 전 세입자가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세입자들의 요구에 고객이 집 내부 사진을 찍는 것도 막는다는 게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20년째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모(60)씨는 “빈 집이 아닌 이상 사진 찍는 것도 안 된다”며 “고객들은 다들 사진을 찍고 싶어해 무작정 막기도 난감하다”고 전했다.
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예고 없이 집을 보러오고, 개인 물건이 있는 집의 사진을 찍어가는 건 사생활 침해라는 입장이다. 부동산 세 곳에 원룸 자취방을 내놓은 직장인 최윤아(21) 지난 10월 말 모르는 부동산에서 갑자기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씻고 나오는데 ‘띡띡띡띡’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그동안 내가 집에 없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봤다고 생각하면 너무 찝찝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간 임대인과 부동산중개업소 위주로 돌아가던 거래 방식과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의 문화가 주거침입이나 절도 등의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었던 만큼 예약제 도입 등 범죄 우려가 없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공인중개사)는 “요즘에는 자칫하면 범죄행위로 이어질 수 있고 사생활 문제도 있어서 계약 만기 전 집 보여주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며 “음식점만 가도 예약시스템이 있는데 중요한 재산 거래인 부동산도 현장을 보여주는 행위는 앞으로 예약시스템으로 가지 않으면 계약 진행이 어려울 것이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