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춘동기자] 오는 5월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2조3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CBO 상환을 앞두고 벤처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와 보증을 담당했던 기술신용보증기금은 벤처기업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책임떠넘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경제부 김춘동 기자가 전합니다.
요즘 벤처업계가 술렁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5월 벤처대란설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벤처기업들이 5월부터 연말까지 갚아야 할 빚이 2조3000억원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이 빚은 정부가 빌려준 돈입니다. 지난 2001년 벤처거품이 꺼진 뒤 벤처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자 정부가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보증을 서서 850여개 중소·벤처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주로 IT벤처업체들이 많았고, 상장·등록사도 25%나 이 자금을 빌려 썼습니다.
기보는 2001년 5월부터 12월까지 6차례에 걸쳐 총 2조3234억원의 보증을 섰습니다. 만기 3년짜리였으니까 올해 5월부터 상환시기가 도래하게 됩니다. 벤처기업들은 5월 4500억원, 6월 4300억원, 8월 3600억원 등 매달 4000억원가량의 빚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업체당 평균 상환액도 3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문제는 빚 갚을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개별 기업들의 경영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라경제 전체가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수출이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내수는 침체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오는데 내수부문만 놓고 본다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닌 듯 합니다.
내수침체의 무거운 짐은 고스란히 중소·벤처기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올해 20여곳 이상의 상장·등록사들이 경영부실로 퇴출이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자금조달 측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는 기업들의 사정이 이렇다면 나머지 기업들의 상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기보가 작년말 자체적으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에 해당하는 4200억원은 이미 부실화됐고, 앞으로의 부실비율도 27%, 6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기업당 평균 상환금액이 30억원에 가까워 일시상환에 들어갈 경우 부실률은 이보다도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기보측 판단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도여부와 관계없이 약속대로 빚을 갚으라고 독촉해야 할까요. 아니면 빚 갚을 시간을 좀더 줘야 할까요.
당장 5월부터 상환일이 돌아오는데도 기보와 주무부처인 재경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접 지원기업을 선정하고, 보증을 섰던 기보는 막상 만기가 돌아오면서 부실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경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안되니까 정부가 뭔가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기보는 "재원이 넉넉하다면 재보증을 해주고, 만기연장도 논의할 수 있지만 예산이 없다. 그래서 만기상환을 독촉중이다. 재경부의 분명한 지침이 없다"며 재경부 탓만 하고 있습니다. 기보는 현재 보증재원으로 약 2850억원가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경부도 기보가 알아서 할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재경부는 당시 지원업체 선정이 기보 주도 아래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진만큼 기보가 책임지고 만기연장과 부도처리 여부를 판단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만기를 연장해줘라, 부도 처리해라`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경부는 "만기연장 여부는 기보가 결정해야 한다. 재보증은 현재 기보의 재원으로도 충분하다. 정부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주되 만일의 경우 자금을 지원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처리지침을 줄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재경부의 말이 맞습니다. 정부가 나서게 되면 자칫 기업들의 도덕적해이를 불러 일으켜 `배째라` 기업들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실질적인 지원의 주체가 정부였고, 기보도 정부출연기관으로 정부정책 수행자였음을 감안한다면 재경부가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재원보다는 책임소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재경부와 기보가 공히 눈먼 돈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해 주고, 사후관리도 제대로 않다가 막상 만기가 돌아오니까 부실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관리부실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성공보수금을 챙겼던 알선 브로커의 존재가 그렇고, 지원된 자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된 예도 그렇습니다. 3년간 지원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재경부와 기보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동안 상환일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책임공방의 와중에 만기연장이나 분할상환 등 조금의 배려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는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최근 이헌재 부총리는 틈나는대로 기업가정신의 고양을 역설하고, 고용창출을 위해 중소 벤처기업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일(25일) 오전에는 고용창출형 분사·창업지원 방안도 발표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지원책 발표도 좋지만 문제는 뒤처리입니다. 발표에 이어 사후처리와 결과까지도 책임져야만 임시방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는 당장 두달앞으로 다가온 "P-CBO"라는 시한폭탄 해체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자칫 이 폭탄이 터질 경우 과거는 물론 현재의 벤처지원정책이 모두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책임 공방을 벌이기에 두달은 너무도 짧습니다. 시한폭탄의 째각째각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