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현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8일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일부 직원에게 차기 정부에서 이행할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대선후보 확정 전에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데에 강하게 질책했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선거 중립’을 당부했음에도 일부 부처에서 차기정권에 ‘줄대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수습에 나선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7일 영상을 통해 제22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영상 축사를 전하고 있다.(사진=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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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박 차관이 내부 직원들에게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우리 의견을 내면 늦는다. 공약으로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어젠다를 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게 알려지자 “매우 부적절하다”며 우려했다. 또한 “차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며 “다른 부처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참모진에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제가 된 박 차관의 발언은 지난달 31일 1차관 직속인 기획조정실 주관으로 열린 ‘미래정책 어젠다 회의’에서 나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박 차관은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우리 의견을 내면 늦으니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여러 경로로 의견을 사전에 많이 넣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진행형인 가운데 각 후보 진영에 정책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차기 정권에 대한 줄 대기를 시도했다는 비판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 부처 내에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 지난 7월 5일 참모회의에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경제회복 등 현안과 민생에 집중하라”고 지시했으나 두 달여 만에 줄대기 의혹이 불거졌다.
문제의 발언이 문 대통령의 측근인사에서 나온 것도 곤혹스럽다. 박 차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통상비서관과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을 지냈다. 다주택자 논란으로 물러났으나 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산업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한 입장자료를 통해 “보도에서 언급한 박 차관의 지시는 새로운 정책 개발 시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일자리, 중소기업, 지역경제 등의 정책에서 구체적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