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美빅테크 정조준…대서양 무역戰 다시 불거지나

EU, '힛 리스트' 작성…FAAG 포함 최대 20개 기업 타깃
규제 강화 땐…벌금 넘어 기업 해체-자회사 매각 등 조처
美 규제당국-의회서도 '독과점' 우려 목소리 나오지만…
EU 행동 땐 美 보복 자명…대서양 무역전쟁 확전 가능성
  • 등록 2020-10-12 오후 3:46:11

    수정 2020-10-12 오후 3:46:11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이른바 독과점 행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반(反) 독점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구체적인 ‘메스’를 들 태세다. 다만, 대상에 오른 기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인 만큼 가뜩이나 긴장이 흐르는 미국과 EU 간 소위 ‘대서양 무역전쟁’ 확전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대 20개 기업 타깃…기업 해체 방안도 담길 듯

1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U 규제당국은 규제대상 기업, 즉 ‘힛 리스트’(hit list)를 작성 중이다.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과 이용자 수 등의 기준을 통해 추려낼 이 리스트에는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구글 등 이른바 FAAG를 비롯, 최대 20개 기업이 선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기업의 막강한 시장 영향력 탓에 발붙일 곳이 없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조처라는 게 EU 규제당국의 설명이다. 만약 이 리스트에 오를 경우 해당 기업들은 데이터 공유·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다른 소규모 기업들보다 더 많은 제재를 받게 된다.

문제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이번 규제 방안은 단순 벌금 수준이 아닌 기업 해체나 자회사 매각까지 요구하는 수준으로 강화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이 사안에 정통한 EU의 한 소식통은 “빅테크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그들은 적은 세금을 내면서 시장 경쟁력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그간 EU 내부에선 이들 빅테크 기업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해 고심해 왔으나 법 위반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사실 빅테크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줄곧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미국의 양대 반독점 당국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독점 여부를 분담해 조사하기로 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바 있다. 법무부는 애플과 구글을, FTC는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조사를 각각 담당한다. 양 규제당국으로선 앞으로 이들 4대 공룡 기업이 미국 등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한 경쟁을 억제했는지 등을 언제든 조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사진=AFP
지난 6일 미 하원 법사위 산하 반독점소위원회도 16개월에 걸쳐 이들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은 449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이들 기업이 검색과 광고, SNS, 출판 등 시장 내 독점적 지위를 행사·남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의회가 당장 이들을 겨냥한 입법 절차를 밟지는 않겠지만,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빅테크 기업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계기는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EU 행동 개시 땐 美 반격 가능성…무역전쟁 심화

FAAG의 영향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이들 기업의 시장가치를 모두 합하면 5조달러 이상으로, 미국·중국·일본·독일 등 이른바 ‘G4’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합을 넘어선다.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거대한 공룡이 된 FAAG에 제동을 걸 견제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없애고, 세금을 피해 갈 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씨를 말리면서 시장의 실패를 조장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진격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내주는 정보가 이들에겐 그저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며 이들 4대 기업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EU의 힛 리스트에 오를 대부분이 이처럼 미국 기업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미국-EU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양측은 현재 FAAG 등에 대한 디지털세 부과, 프랑스·독일·스페인·영국 등 4개국의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 등의 문제는 놓고 고율 관세폭탄을 주고받는 등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이 보복성 관세를 매기고 있는 EU 제품은 75억달러 이상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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