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나는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해요.”
|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솔로르 역 전민철의 연습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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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로 잘 알려진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는 탄광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는 소년이다. 빌리는 왜 춤을 추고 싶으냐는 질문에 “춤을 추면 그냥 기분이 좋다”고 답한다.
발레리노 전민철(20)은 한국판 ‘빌리’다. 13세였던 2017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 과정을 담은 TV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전민철은 당시 방송에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용이 좋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시청자들 뇌리에 각인됐다. 오디션에선 또래 아이들보다 큰 키 탓에 아쉽게 탈락했다.
그럼에도 발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입학해 3학년에 재학 중인 전민철은 이제 ‘차세대 발레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내년 봄 세계적 권위의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할 예정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에 한국인 발레리노가 입단하는 것은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김기민(32)에 이어 전민철이 두 번째다.
|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솔로르 역 전민철(오른쪽), 니키아 역 이유림의 연습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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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전민철을 만났다. 그의 머릿속은 발레로 가득했다. 발레 이외의 취미가 뭔지 묻자 전민철은 “그 질문이 가장 어렵다”며 “취미를 가져야 할 시간에 항상 발레를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스무 살 앳된 얼굴은 발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행복과 기쁨을 담은 미소로 번졌다.
TV 출연 당시 아들이 발레를 하는 걸 반대했던 아버지도 이후 적극적으로 전민철을 응원했다. 물론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전민철은 “선화예중에 들어간 뒤 발레를 하는 걸 처음으로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을 만나면서 발레가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19년 출전한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outh America Grand Prix, YAGP) 콩쿠르가 전환점이 됐다. 전민철은 2019년 이 대회 주니어 부문 결선까지 진출했고, 2023년엔 같은 대회 시니어 부문에 출전해 클래식 파드되 1위, 시니어 솔로 3위를 차지했다.
“콩쿠르에서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보다 미국을 가고 싶어서 도전했어요. 어릴 때였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콩쿠르 참가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발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솔로르 역 전민철. (사진=유니버설발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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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철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발레 ‘라 바야데르’로 첫 전막 발레 주역에 도전한다. 29일 마지막 날 공연에서 주인공 솔로르 역으로 출연한다. 김기민, 박세은(파리 오페라 발레) 등 발레 유망주를 발굴해 일찌감치 주역 기회를 제공해온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결정이다. 전민철은 “공연이 다가오면서 부담도 크지만, 관객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사랑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막장 드라마까지 참고하며 감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민철은 발레 중에서도 클래식 발레를 좋아한다. 스토리에 맞춰 연기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안무의 매력이 크단다.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을 결심한 이유 또한 클래식 발레를 대표하는 발레단이기 때문이다. 전민철은 “다른 발레단에 들어가면 ‘나의 춤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마린스키 발레단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떼는 전민철은 이제 새로운 꿈을 꾼다. 관객을 위해 춤을 추는 것이다. “관객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무용수가 될 거예요. 오랫동안 춤을 추며 관객에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솔로르 역 전민철(왼쪽), 니키아 역 이유림의 연습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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