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무단 이탈한 가운데, 이들이 잠적하기 전까지 공동숙소 직원이 매일 밤 10시 ‘통금 규칙’을 위해 가사관리사 방문을 두드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가사관리사가 방 안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두드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가사관리사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홈스토리생활 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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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26일 이데일리에 “그들은 우리가 방 안에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 매일 밤 10시 방문을 두드렸다”고 증언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묻자 “아파트 직원(staff of the appartment)”이라고 답했다. 시범사업 시행업체인 홈스토리생활(서비스명 대리주부), 휴브리스(돌봄플러스)가 서울 역삼동에 마련한 가사관리사 공동숙소를 관리하는 직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4일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개최한 긴급 간담회에서 가사관리사들은 ‘밤 10시 통금 규칙’을 거론하며 “우리의 자유를 박탈해 간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데일리에 증언한 관리사도 “우리는 통금이 매우 불편하다”며 “우리는 이미 업체(agency)에 우리의 우려와 문제에 대해 말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도 토로했다. 그는 “업체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돈에만 관심 있다. 우리에게 실망스러운 일이다(This is frustrating for us)”라고 했다. 가사관리사 2명의 무단이탈 배경으로는 “통금과 급여 때문”이라고 봤다. 이어 “관리사 2명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이틀 후부터 그들은 방문을 두드리지 않고 있다”며 “대신 10명의 (가사관리사 동료) 팀장에게 매일 밤 관리사들이 들어왔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업체는 관리사 2명이 이탈한 이후 관리사들이 모두 있는지 확인했고 평소엔 관리사들이 조를 짜서 자체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가사관리사는 “훈련 첫날부터 밤 10시 통금 시간이 있었고, 아파트 직원들은 (가사관리사 이탈) 보도 전까지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통금 자체가 행동의 자율을 제약하는 행위”라며 “방문을 두드리는 것은 구금시설처럼 운영되는 모양새”라고 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방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다른 이에게 왜 알려줘야 하나”라며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했다.
근로시간 외 시간에 대한 근로자(가사관리사) 행동을 제약했다는 점에서 노동법 위반 소지도 불거질 전망이다. 근로기준법 제99조에 따라 부속 기숙사에서 취침, 외출 사항을 정하려면 근로자 동의를 받아 ‘기숙사 규칙’을 마련해야 하지만 업체는 아무런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고용부는 이데일리가 취재에 나서자 가사관리사들의 공동숙소를 ‘부속 기숙사’로 볼 수 있는지 유권해석 작업에 나섰다. 박영아 변호사는 “기숙사가 아니라면 가사관리사들은 세입자에 불과한데, 업체는 근로자 동의 없이 세입자 사생활을 침해해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한편 인권단체와 여성단체, 노동계는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를 26일 출범했다. 이들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번 이탈 사태에 대해 “시범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다”며 “인구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여성의 돌봄 과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