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평양공동선언 3주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자주국방 강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전날 독자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이 성공하면서 성과를 거뒀으나 같은 날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도발을 감행한데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까지 나서 문 대통령을 ‘우몽하다’며 비난하면서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미사일전력 발사 시험을 참관하고 있다.(사진=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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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을 비난한 김 부부장의 담화와 관련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강경 발언에 직접 대응을 삼가면서 남북간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한 숨고르기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또한 통일부가 나서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최소한의 존중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낸 만큼 청와대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문 대통령은 SLBM 시험 발사를 참관한 후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네 시간 후 김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이 부적절한 실언을 했다”며 “한 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우몽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은 북한의 잇다라 미사일 실험을 하는 데에 “남측의 국방중기계획과 다를 바 없다”며 도발은 억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당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계획의 첫해 중점과제수행을 위한 정상적이며 자위적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의 무력시위가 그 누구를 겨냥하고 그 어떤 시기를 선택해 도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자 청와대는 난감한 기색이다. 당장 오는 19일 평양공동선언 3주년을 앞두고 있는데다 다음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려는 찰나에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방미를 앞두고 문 대통령은 불필요한 외부 일정을 줄이고 유엔총회와 평양공동선언 3주년을 맞아 내놓을 대북 메시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부부장의 기존 담화에 비해서는 비난 수위가 다소 낮았던데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가 아닌 ‘대통령’으로 언급한 점에서 대화 국면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라 보고 있다. 김 부부장 역시 담화에서 “(남북관계 파탄을)바라지 않는다”고한 것도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본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이후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진행된 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에서도 직접적인 비판대신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등 원론적으로 대응한 바 있다.
|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15일 도산안창호함(3천t급)에 탑재돼 수중에서 발사되고 있다.(사진=국방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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