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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사나워지자 정치권은 앞다퉈 비슷한 법안을 쏟아냈다. 여야 의원들이 당시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20여건에 달한다.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정작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가 안건을 논의한 횟수는 세 차례에 불과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KTX탈선이나 택시·카풀 갈등과 같은 빅 이슈에 치이는 데다 상반기 국회 파행이 겹치며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겨우 열린 소위에서도 논의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있다. 지난달 16일 국회 국토위 소위에서도 여야는 입장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중요 쟁점에 해당하는 △늑장 리콜에 대한 벌칙 △입증책임의 전환 문제 등을 놓고 위원들 간 평행선을 달렸다.
현재까지 여야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 명시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조물 책임법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선 여전히 ‘동상이몽’이다. 1년 전 상황보다 진전된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현재 한국당 의원은 “모든 제도는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며 “다음에 소위를 잡아 전문가 의견을 듣자”고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입장이 업계 쪽의 의견을 들어 벌칙을 완화하는 쪽”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송석준 한국당 의원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소비자가 있다”며 “가감없이 제대로 소통하고 (이들의 의견이)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처럼 접점없는 논의가 이어지자 소위원장을 맡은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좁혀지지 않은 쟁점은 다음에 더 의견수렴과 조정절차를 거치자”고 논의를 마쳤다. 다음 소위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사건·사고가 터질때마다 국회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강조하고 나선다. 작년 여름을 연상케하는 폭염이 찾아왔지만 제도개선은 요원할 따름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치력을 발휘해 본격적인 제도 마련에 집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