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언제쯤 나올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른 말을 했다. 전례없는 ‘속도전’ 양상을 보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결과물을 신뢰하기가 꺼림칙하다는 이유에서다.
제약회사 모더나와 화이자가 시판 전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에 착수해 코로나19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 우려도 제기된다.
통상 백신 개발에는 10년~15년이 걸린다. 코로나19는 창궐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더나, 화이자 등의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이르면 올해 말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왜 그럴까. 코로나19가 펜데믹(전세계 감염병 대유행)이 됐기 때문에 전세계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또 두 회사가 백신을 만들고 있는 방식(mRNA 활용)이 개발 속도를 단축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등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에게 뒤지는 등 재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는 백신 개발을 마지막 반전 카드로 노리고 있다.
백신은 모든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안전성과 효과 두 가지가 다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안전성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치료제는 효과가 크면 부작용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써볼 수 있다. 하지만 백신은 다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다. 0.1%의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백신이라면 1억명이 맞았을 때 10만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속도전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입증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릴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약의 부작용은 시판된지 한참 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mRNA를 활용한 백신은 단 한번도 상용화된 적이 없어 부작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큰 상태다.
화이자, 모너나의 경우 3만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에 착수한다. 하지만 실제 위약(가짜약)을 맞는 대조군을 제외하고 개발 중인 백신 후보물질을 실제 맞는 실험군은 1만5000명으로 줄어든다.
의약품은 임상 3상을 통과하고도 시판 후에 문제가 돼 시장에서 퇴출된 약이 적지 않다. 실제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가 개발한 뎅기열 백신 ‘뎅그박시아’는 2017년 시판 후 사용이 중단됐다. 백신 접종 어린이들 가운데 뎅기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증상이 더 악화하는 경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부 제약회사의 신종 플루 백신도 면역증강제와 함께 사용되다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심한 졸음과 수면발작을 가져오는 기면증 증세를 일으켰다.
이밖에도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시절의 신종 돼지독감 백신의 경우 급하게 개발되고 접종돼 수백명을 길랑바레(Guillain-Barre) 증후군이라는 드문 신경계 질환의 위험에 빠트렸다.
김우주 교수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은 모두의 희망사항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고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