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시대의 격동을 목격한 공간, 장충단.’
5일 오후 3시쯤 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오면 곧바로 마주하는 장충단공원에 들어서니, 파란 가을 하늘 아래로 네모 반듯하게 잘 가꿔진 잔디밭 위에 석등과 비석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장충단공원 초입에 자리한 ‘장충단비’는 1895년 을미사변 때 경복궁을 침입한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명성황후와 궁내부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죽은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황제의 친필이 새겨진 ‘장충단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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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는 1900년 을미사변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려고 장충단과 장충단비를 세웠지만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일제에 의해 폐지되고 비석도 뽑히고 말았다. 이곳은 이후 1920년 후반 일제가 일대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장충단(奬忠壇)이란 글자는 고종황제의 아들인 순종황제가 황태자 시절에 직접 쓰기도 했다.
장충단공원 내에는 약 1㎞ 길이의 산책로가 숲 사이로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장충단비 △사명대사 동상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이준 열사 동상 △이한응 선생 기념비 △수표교 등 역사·문화유산과 현충시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장충단공원 일대는 호국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 대표 137명은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공원 내 파리장서비는 이를 기념해 건립됐다. 또 이준 열사는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지만 일제의 방해와 열강들의 냉대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지에서 순국했다. 이준 열사의 유해는 1963년 수유리에 안장됐고, 1964년엔 장충단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 이준 열사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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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에선 이런 역사의 현장을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장충단 호국의 길’을 조성·운영하고 있다. 이 길은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선생 기념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김용환 지사 동상→국립극장’까지 이어지는 6㎞ 코스다. 중구청 홈페이지에서 탐방 희망일 5일 전까지 신청하고 4인 이상 모이면 탐방이 진행된다.
장충단공원 내 산책로를 따라 있는 수변공간에는 조선시대 청계천을 가로지르던 돌다리인 ‘수표교’도 만나볼 수 있다. 한양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에 지어진 돌다리로 옆에 물의 높이를 측량하던 기구인 수표가 있어 수표교라고 불렸다.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며 해체해 이듬해인 1959년 공원 안에 옮겨 복원됐다. 다리 길이는 27.5m, 폭 7.5m, 높이 4m로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장충단공원은 남산 산책로와 곧바로 이어지고 인근에 ‘장충동 족발 골목’과 1946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인 ‘태극당’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수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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