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은 물론 세계 어디서나 ‘공무원은 일처리가 늦고 복잡하다’는 원성은 계속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디지털로 전환한 에스토니아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국회 초청 등으로 한국을 찾아 바쁜 일정을 소화중인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국내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갖고 디지털 시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에스토니아와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디지털 경제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교육도 바뀌어야”
에스토니아는 1991년 다른 발트해 연안 국가와 함께 소비에트연방(소련)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다. 빠른 국가 발전이 필요했던 이들은 1990년대말부터 전자신분증을 기반으로 한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化)를 추구했고,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부터 ‘디지털ID’를 전면 보급하며 공공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진행했다. 에스토니아는 UN이 발표하는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나라와 상위권을 다투며 동시에 협력하기도 하는 사이다.
나아가 2010년대부터는 전자영주권(e-Residency)을 발급해 에스토니아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외국인 기업가를 대상으로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직접 투자(FDI)를 이끌어냈다.
2016년 10월 에스토니아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한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통신업체와 투자은행, 국영 에너지 기업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의 혁신을 더욱 가속화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암호화폐 투자자 공개모집(ICO)도 제도적 틀 안에서 허용하고 있다.
이어 에스토니아가 전자신분증 도입 후 전체 금융거래의 99%, 세금 납부의 95%를 디지털 시스템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디지털 환경을 통해 공공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1인당 4~5일을 절감하고 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교육 방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내총생산(GDP)의 7%를 공교육에 투자해 5~6세부터 로봇을 활용한 쉬운 교육 내용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원할 경우 최고의 대학 교육까지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아이들이 영어를 어느 정도 시작하는 9~10살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코딩 관련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한다”며 “학교도 이제 학습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방식을 제공하고 또 권장할 수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韓 기업, 전자영주권 서울서 받고 EU 진출 도움 받길”
에스토니아 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하려는 외국인 기업가 등을 대상으로 한 전자영주권을 발급하며 이를 세계인 모두에게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현재 에스토니아는 경기도와 협약을 맺고 경기도내 기업이 전자영주권을 한국에서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여러 차례 만나 협력을 논의했고,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물론 박 시장에게도 전자영주권을 발급했다.
그는 “한국이 하드웨어 분야에서 매우 앞서 있는 나라고, 여기에 우리가 소프트웨어 요소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블록체인이나 사이버 보안 분야는 물론 IT 전문 인력 교류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이 에스토니아의 전자영주권을 통해 우리와 유럽연합(EU)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역내 기업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운영을 시작한 한국 소재 전자영주권 신청센터의 접수 건수는 10일 오전 현재 1302건이며, 세계적으로는 160개국에서 5만건에 가까운 신청서가 접수됐다.
전자영주권 사업을 전담하는 에스토니아 공공기관 이레지던시(e-Residency)의 오트 베터 부대표는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인프라는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계속 노력한 결과가 쌓여 이룬 것”이라며 “정부의 결정과 지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