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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 다음날인 16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제31회 이데일리 퓨처스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21대 총선 분석’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신 교수는 여당의 압승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40년 넘게 정치학을 연구해왔으나 이념지형 변화에 둔감했다. 오늘 아침 처절하게 반성했다”고 고백했다.
정치문법 벗어난 4·15총선…3년 만에 변한 이념지형
신 교수가 4·15총선에서 야당 승리를 점쳤던 가장 큰 이유는 전례 없이 높은 투표율 때문이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6.2%로 1992년 14대 총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았고, 사전투표율은 26.7%로 역대 최고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4~5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94.1%(반드시 투표 79.0%, 가능하면 투표 15.1%)가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는 “투표율이 높을 때는 민주화 항쟁이나 촛불 정국 직후처럼 ‘정치적 효능감’이 크거나 축적된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고 싶을 때”라며 “최근에 정치적 효능감을 높일 만한 사건이 없었기에 분노로 인한 투표율 상승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힘이 없는 야당은 분노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총선은 정권심판 성격이 강한 선거라는 점에서 이번 투표율 상승은 여당 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판단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4·15총선의 높은 투표율로 미뤄볼 때 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보수가 완패한 것은 진보와 보수가 1대1 또는 보수가 조금 더 높은 이념지형이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신 교수의 분석이다. 진보 비율이 보수보다 높은 이념지형에서는 정권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최종 승자는 진보성향인 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미래통합당의 실책은 자신의 핵심지지층인 보수만 끌어보아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념지형이 달라졌음을 몰랐기 때문”이라며 “통합당은 핵심지지층에게 욕먹을 것이 두려워 확장성을 추구하지 못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또 “민주당(더불어시민당 포함)이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180석 압승을 거둔 것 역시 이념지형 변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객석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1년 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력 정치인이 ‘한국 사람의 70%가 진보적인 성향으로 가고 있고 되돌리기 어렵다’고 설명해 놀란 적이 있는데 이번 총선에서 표면화된 것 같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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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신 교수는 이낙연 민주당 의원(전 국무총리)의 대망론에는 의문부호를 붙였다. 이 의원은 ‘정치1번지’로 불리는 종로에서 황교안 전 대표를 누르고 승리했고, 민주당 총선도 완승으로 이끌며 차기 대선주자 1위로 주목받고 있다.
신 교수는 “이 의원이 앞으로 대선을 ‘떼어 놓은 당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의원의 문제는 친문(친문재인)이 아니는 것”이라며 “친문은 순혈주의가 매우 강해 자신들이 스스로 후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총선과 대선은 큰 관련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신 교수는 한동안 보수에서는 대권 주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유력한 잠룡으로 꼽혔던 오세훈 전 시장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서울 광진을에서 패해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대구 수성을에서 당선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에 대해서도 “달라진 이념지형에서 적합한 인물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