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는 17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랜더스와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다. 하지만 2위 삼성라이온즈가 두산베어스에 덜미를 잡히면서 매직넘버 1을 털어냈다. 2007년 이후 7년 만에 이룬 정규리그 1위 확정이다.
시즌 전만해도 우승후보로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KIA가 이처럼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지은 데는 이범호 감독의 공이 절대적이다. 이범호 감독은 타이거즈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KIA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사령탑이 됐다.
2000년 한화이글스에서 데뷔한 이범호 감독은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잠시 거쳐 2011년 KIA 유니폼을 입었다. 2019년까지 선수로 활약하면서 팀의 중심타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2017년에는 KIA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이범호 감독은 KIA를 떠나지 않았다. 스카우트, 2군 총괄 코치, 1군 타격 코치 등 코칭스태프 보직을 맡으면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구단 안팎에서는 일찌감치 ‘준비된 감독감’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마침 올해 1월 KIA 선수단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김종국 전 감독이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돼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 부랴부랴 후임자를 물색한 구단은 스프링캠프 출국을 앞두고 이범호 당시 타격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너무 이르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위기 상황인 만큼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지도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범호 감독도 이미 시즌을 어떻게 치를지 머릿속에 구상된 상태였다. 그는 감독 면접 때 KIA 타자들이 6월 이래 활발한 타격을 펼쳤던 최근 몇년 간의 데이터를 보여줬다. 그에 맞춰 시즌 초반 4∼5월 팀 성적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사령탑에 오른 뒤 이범호 감독은 초반부터 승부를 걸었다. 정규시즌 개막 후 3∼4월에 21승 10패를 기록,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당시만 해도 ‘저러다 떨어지겠지’라는 평가절하도 있었지만 이범호 감독은 뚝심 있게 팀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즌 내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KIA는 시즌 개막 당시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된 투수 가운데 4명이나 부상에서 이탈했다. 외국인투수 윌 크로우와 캠 알드레드가 시즌 도중 부상과 기량 미달로 팀을 떠났다.
토종 투수 가운데는 이의리와 윤영철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1선발 역할을 해줬던 제임스 네일 마저 8월 24일 창원 NC 전에서 타구에 얼굴을 맞아 오른쪽 턱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결국 7월 이후 꾸준히 6할 이상의 높은 승률을 유지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2위 팀들이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그때마다 맞대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추격의지를 꺾었다.
KIA는 올 시즌 2위팀과 맞대결에서 무려 0.867라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했다. NC. 두산, LG, 삼성 등이 번번이 KIA와 맞대결에서 패한 뒤 주저앉았다. 심지어 ‘호랑이 꼬리잡기 저주’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만큼 중요한 고비마다 이범호 감독의 승부사 기질이 빛났다는 뜻이다.
이범호 감독이 마냥 ‘오냐오냐’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참 선수들이라고 해도 아쉬운 플레이가 나오면 어김없이 교체했다. 심지어 에이스 양현종까지도 승리를 위해서라면 가차없이 조치했다.
7월 17일 삼성과 경기에서 9-5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기고 양현종을 교체한 장면은 이범호 감독이 어떤 지도자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양현종도 그 순간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화를 애써 참으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하지만 이내 이범호 감독은 뒤에서 양현종을 껴안으면서 그를 위로했다. 이범호 감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양현종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시즌 내내 이범호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7년 만의 정규시즌 1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