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 가수를 비롯한 연예계 스타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돼 활동 중이다. 과거엔 1020세대가 팬덤의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오디션 스타의 등장에 이어 트롯 열풍이 더해지면서 중장년층도 팬덤에 가세,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를 선망하는 것을 넘어 스타가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서포트한다. 음원·음반차트, 시청률·화제성, 콘서트 및 팬미팅 티켓 매진 경쟁은 기본이다. 최근 들어서는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를 집중구매해 매출 상승을 가져오기도 한다. ‘조공’ 문화도 주목된다. 과거엔 스타에게 선물을 전하는 ‘조공’이었다면, 이제는 스타의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팬들이 스타의 이름을 앞세워 기부를 하는 ‘사회 환원’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트롯 열풍으로 중장년층 팬들이 늘어났고, 기존 아이돌 팬덤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중장년층 이상 팬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중장년층 팬들이 기존 젊은 팬들과 차별화되는 뚜렷한 특징으로 경제력을 꼽을 수 있는데, 광고 브랜드 제품 구매와 기부 같은 가시적인 팬덤 활동이 과거보다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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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와 팬덤을 꼽으라면 TV조선 트롯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서 진(眞)을 차지한 임영웅과 공식 팬클럽 영웅시대를 꼽을 수 있다. 영웅시대에 가입한 팬카페 가입자 수는 13일 기준 12만9220명이다. 이는 지방 소도시 인구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기도 포천시 인구가 2020년 8월 기준 14만7000명(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임영웅의 팬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50~60대를 주축으로 80~90대 고령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했다. 이들은 임영웅이 발표하는 노래를 스트리밍하고, 임영웅이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임영웅이 수상자로 호명될 수 있도록 투표를 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한다. 특히 카페 운영진의 가이드에 따라 음원차트 ‘총공’(스트리밍 총공격)까지 하며 아이돌 팬덤 못지않게 조직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중장년층 팬덤은 대중문화와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온 세대로, 강력한 몰입력을 발휘하는 콘텐츠가 있으면 충분히 빠져들고 소비할 수 있다”며 “K팝 팬덤을 확장시키고 나름의 로직을 만든 세대이기 때문에 스타와 함께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임영웅이 지난 8월 직접 라이브 판매에 나선 구전녹용 제품은 2시간 만에 5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구전녹용의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대였다. 1년 매출의 5%를 불과 2시간 만에 올린 것이다. 더불어 임영웅이 모델로 발탁된 매일유업 ‘바리스타룰스’ 영상은 광고 영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공개 두 달 만에 1000만뷰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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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 팬덤 문화가 젊은 층 위주였다면, 지금은 팬덤 문화의 축이 중장년층으로 이동하는 상황”이라며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고 사회적 기반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한 후원과 지지를 젊은 층보다 더욱 강력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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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 2주 연속 1위에 등극하기까지는 팬덤 아미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의 영향력 못지않게 팬덤 아미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들 역시 방탄소년단의 음악 콘텐츠를 집중적·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물론 다채로운 기부·봉사활동으로 가수의 위상을 높여주고, 방탄소년단이 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소비를 펼치고 있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팬덤에는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뿐 아니라 해외팬들까지 가세했다. 방탄소년단은 광고모델 계약시 해외 온에어 지역까지 계약 조건을 세분화해 개런티를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이 뜨면 제품도 뜬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는 연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현재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 SPC그룹의 배스킨라빈스, 한국야쿠르트의 콜드브루, 스포츠브랜드 휠라, 삼성전자 갤럭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바디프랜드, 경남제약 레모나 등 모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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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착용한 옷, 사용 중인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해당 제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지난 10일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KBS ‘뉴스 9’에서 RM이 입고 나온 카디건은 명품 브랜드가 아닌 SPA 브랜드 자라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고, 방송 직후 해당 제품에 대한 구매 문의가 빗발치며 일시품절됐다. 멤버 정국은 지난해 1월 팬들과 공식 팬카페에서 채팅을 하던 중 평소 세탁을 할 때 어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특정 제품 브랜드를 언급했다가 품절 사태를 불렀다. 해당 업체는 갑작스런 주문 폭주로 하루 만에 2개월치 판매 수량이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정국은 SNS에 “저 섬유유연제 거의 다 써서 사야 되는데 다 품절. 대단해 아미”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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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을 보유한 중장년층이 팬덤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그룹 워너원부터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방송된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를 통해 데뷔한 워너원은 1020세대부터 4050대 중장년층 주부팬까지 흡수하며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시청한 중장년층 팬들, 멤버 선정에 한표씩 유료투표를 행사한 시청자들이 ‘내 손으로 뽑았다’며 워너원 멤버들에게 빠져들었다. 그 결과 ‘할머니와 엄마와 딸’ 3대가 함께 손을 잡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동안 연예인을 ‘덕질’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었다면, 워너원 이후로 ‘덕질‘은 ‘취미생활’의 일종으로 여겨지면서 중장년 팬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스마트기기 활용, 음원 이용 등에 미숙했던 중장년층이 음원 시장에 대거 유입된 것도 이 즈음으로 분석된다.
전 연령대의 지지를 받다 보니 워너원은 다양한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됐고 렌즈, 화장품, 피규어, 스니커즈, 교통카드, 패딩, 치킨 등 워너원을 내건 상품들은 봇물처럼 팔려나갔다. 이니스프리의 마스크 제품은 워너원 모델 효과에 힘입어 매출이 300% 이상 급증했으며, 하이트진로는 하이트 맥주의 노후화된 이미지를 벗고 소비층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워너원을 표지모델로 내세운 시사주간지가 불티나게 팔려나간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주간조선이 워너원 1위 멤버 강다니엘을 표지에 올린 데 이어 주간동아는 3주 연속으로 워너원을 표지모델과 커버스토리로 집중조명했다. 시사주간지가 아이돌을 전면에 나선 건 이례적인 일로, 기존 시사주간지의 독자층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스타를 소비하는 팬덤의 영향력이 업계 전반으로 확대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