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내년 설비투자(CAPEX) 비용 증가로 재무 부담이 정점에 이르리란 전망이 나왔다. 배터리 업계가 대규모 수주잔고에 대응, 생산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자 조 단위 설비투자를 진행하면서다. 다만 설비투자 비용 대부분이 신규 물량 대응을 위한 것인 만큼 새로운 공장이 가동되면 판매량과 영업이익이 증가하며 외형적 성장을 이룰 전망이다.
| (일러스트=게티이미지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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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올해 설비투자액은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10조원, SK온이 7조원, 삼성SDI가 3조원 이상을 각각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가 예상한 올해 배터리 3사 연결기준 영업이익 합계가 4조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벌어들인 돈의 5배에 달하는 돈을 설비투자에 쓰는 셈이다.
이에 배터리 3사의 올해 순차입금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 셀 업체(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과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에너지솔루션부문)의 순차입금 규모가 2021년 11조원, 2022년 12조원 규모에서 올해 23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배터리 3사는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 둔화 영향으로 일부 투자계획을 수정하기도 했으나 내년 설비투자 비용도 올해를 웃돌 정도로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배터리 업계의 재무 부담은 내년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배터리 셀 업체의 내년 순차입금 규모도 37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관측된다.
| (표=한국기업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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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 최근 심화하는 지정학적 이슈들로 중국 공급망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공급망 변동 시 배터리 수율 저하와 물류비 증가, 구매 가격 인상 등에 따라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신규 생산 거점을 세울 때도 투자비 증가, 가동률 저하, 신규 공급업체 발굴 과정에서의 개발비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박종일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배터리 기업들은 대규모 수주 잔고에 대응하기 위해 조 단위의 설비투자를 진행하면서 생산 능력 확충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투자자금 소요가 집중되는 시기와 수익성 개선의 제약이 있는 시기가 맞물리면서 배터리 업계 전반의 재무 안전성 저하는 내년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배터리 업계의 이 같은 재무 부담은 시차를 두고 생산 능력 증가와 이익 규모 확대로 이어지며 차입금 부담을 완화할 전망이다. 배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 부담은 대부분 생산 능력 신·증설에 집중되고 있고 신·증설 규모가 고객사로부터 확보한 수주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비투자는 곧이어 판매량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과거 대비 증가하고 있는 규모의 경제와 비용 경쟁력 있는 거점 활용, 높아진 제품 표준화 수준, 공정 노하우 축적 등으로 비용 경쟁력이 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중국 기업에 대한 견제 움직임으로 인해 단기적 판가 협상력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