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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주요 연기금과 7대 공제회 등에 해외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상향해달라고 요청했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환율을 미리 고정해둔 거래방식을 뜻한다. 정부가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외환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이 같은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정부는 국내 자본시장 큰손인 국민연금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해외투자 자산의 10%에 환헤지를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부터 해외투자 자산에 ‘환오픈’ 전략을 시행 중이다. 환오픈은 환헤지를 하지 않고 환율 변동성에 자산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을 말한다. 규정에 따르면 예외적으로 자산의 5% 범위 내에서는 환헤지를 할 수 있지만, 해외투자 자산 규모가 워낙 커지면서 비용 등 문제로 적극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해외투자에 나설 때 현물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여야 해서 이 수요가 환율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9월 말 기준 약 900조에 달하는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규모는 3355억달러(약 443조7000억원)다. 이중 해외주식과 해외채권 자산은 각각 247조5640억원(27.6%), 70조3090억원(7.8%)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정부의 요청대로 환헤지 비율을 10%로 상향 조정하면 외환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금액은 336억달러(약 44조4000억원)쯤 된다.
사학연금이 최근 해외자산을 매각해 환차익을 실현하고 금리가 급등한 국내 채권을 저가 매수하겠다는 내용 등을 포함한 중장기 전략적 자산배분안(2023~2027년)을 마련한 것도 정부의 요청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요청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단 환율이 높을 때 해외자산을 일부 매각해 환차익 효과를 보겠다는 판단이다.
“환헤지 일부 필요” VS “수익률 책임질 거냐”
한 연기금 관계자는 “기관마다 정책이 있고, 운용 부서에서 함부로 정하지 못하는 만큼 환헤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운용 규모가 큰 기관에서 외환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 정부의 요청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정부가 환헤지 비율을 상향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환손실이 발생해 수익률이 낮아지면 그건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기관 특성에 맞춰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전략을 짜기 때문에 환헤지 비율을 조정한다고 해도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올랐을 땐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질 것도 아닌데 기관에 강제하다시피 환헤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연금은 다음 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환헤지 비율과 방식, 해외투자 계획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달 기획재정부의 요청을 받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환헤지 관련 상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헤지 비율 상향 여부 및 헤지 규모, 시행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