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노조 회계 공개,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 등록 2023-02-13 오전 6:15:00

    수정 2023-02-13 오전 6:15:00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연 초부터 노정갈등이 심상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중 가장 최우선 과제로 꼽은 노동개혁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경찰이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건설노조 사무실 등 34곳을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지난 몇 년간 방치돼 온 건설현장의 불법을 정부가 뒤늦게나마 시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만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연임된 한국노총의 김동명 위원장은 “한국노총을 상시적 투쟁기구로 즉각 개편하고, 정권의 억압과 탄압에 맞서 더 강한 투쟁, 더 강한 저항으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무실을 압수 수색을 한 민주노총은 더욱 강력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정권 출범 초 다소 갈짓자 행보를 보였던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는 지난 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벌였던 화물연대에 대한 법과 원칙에 기초한 대응에서 확고해졌다.

주52시간제 유연성 제고,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확립 등 아직도 노동개혁의 길은 멀지만 지난 해 말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제기한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노사관행을 근원적으로 시정할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사실 공직, 기업의 부정과 부패는 예방, 적발,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지만 노조의 경우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달 13일까지 대한건설협회 등을 통해 국토교통부가 접수한 전국 1494개 현장에서의 총 2070건의 불법 행위를 유형별로 보면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 58.7%, ‘전임비 등 강요’가 27.4%였다. 노조의 수입과 지출이 투명히 공개됐다면 자율적으로 방지할 수 있었던 사안인 노조 활동가들의 수입원과 관련된 불법 행위가 80%를 넘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단기간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탓에 우리 사회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위안부, 세월호 참사 등 국가의 비극적인 사태를 치유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은 성금이나 정부보조금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개인 잇속을 채우는데 쓰면서 사법처리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4500개 이상 늘어난 국가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의 관리체계를 전면 재조정할 계획이다. 시민단체의 공금 유용과 회계 부정 방지를 위한 이른바 ‘윤미향 방지법’ 추진을 공약한 윤대통령은 “국민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혈세를 쓰는 것에 성역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노조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공공부문 노조부터 자율적으로 회계를 공시하는 시스템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강행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특히 상당 수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지난 정부에서 임명돼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등을 통해 동력을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율적 기구라는 명분으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조가 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선 훨씬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별 노조가 주축인 우리나라 노동조합 구조에서 노조는 사용자에 대항하는 조직이라는 프레임, 경직적이고 권위주의적 노조 조직 문화 등으로 노조 스스로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일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에 대해선 법적 장치를 통해 회계 투명성을 강제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노조가 대기업, 공공기관 중심 노조에서 모든 노동자를 아우르는 노조로 거듭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노조 역시 수입과 지출 내역이 떳떳하다면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에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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