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100'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 [정덕현의 끄덕끄덕]

  • 등록 2023-02-16 오전 6:15:00

    수정 2023-02-16 오전 6:23:34

[정덕현 문화평론가]‘오징어 게임’이 ‘글래디에이터’를 만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이런 평을 내놓은 ‘피지컬: 100’이 K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00명의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이들이 참가해 여러 미션을 통해 ‘최고의 피지컬’을 찾는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은 지난 10일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넷플릭스 TV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아시아권이 아닌 미국, 영국, 유럽, 남미 같은 서구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건 ‘솔로지옥’ 이후 두 번째다. 특히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글로벌 공감대를 가져가기 어려운 예능 분야에서 연애 리얼리티가 아닌 소재와 장르로 이런 성과를 냈다는 데 한국의 콘텐츠업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쏟아진 호평을 보면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IMDb에 올라온 평을 보면, 사소한 갈등도 지나치게 과장해서 강조하는 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 ‘피지컬: 100’은 다르다며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갖추는 게 보기 좋다”는 반응이 눈에 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리뷰 기사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엄청난 근육질의 출연자들이지만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며 특히 “서로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띄워준다”고 평했다. 또 “액션 피겨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 참가자들은 자신이 동경하던 영웅을 만나면 매우 협조적이고, 경쟁에서 물리치기라도 하면 미안해하기까지 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실제로 ‘피지컬: 100’에서는 출연자들이 치열한 대결 끝에 승패가 갈리고 난 후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훈훈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추성훈과 신동국의 대결이다. 추성훈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두 사람은 대결이 끝난 후 같은 격투기 선수로서 서로를 예우하며 포옹했다. 특히 신동국이 절을 하자 추성훈 역시 맞절을 한 후 함께 손을 들어 올려 주는 훈훈한 광경이 감동을 줬다. 또 성별에도 차이를 두지 않는 ‘피지컬: 100’에서 여성 씨름 선수인 박민지가 럭비 선수 장성민을 지목해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모습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경기에서 박민지는 장성민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결과에 선선히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졌잘싸”를 외치는 경기를 관전한 다른 출연자들 속에서, 두 사람은 포옹하며 서로를 상찬했고, 특히 상대 선수였던 장성민은 박민지에게 “반했다”며 “팬심으로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고 상대를 추켜세웠다.

치열한 경쟁 서바이벌이 펼쳐지지만 승패가 결정된 후에는 상대방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는 모습. 승자는 상대를 예우하고 패자는 인정하는 이 모습은 ‘피지컬: 100’이 서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만든 지점이다. 그런데 이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최근 들어 국내의 몇몇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보여줘 이미 큰 호평을 받았던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등장과 함께 상대 크루를 씹어 먹을 것처럼 으르렁대고 그렇게 무대에 올라 살벌한 대결을 펼쳤지만, 승패가 갈리고 나면 상대에게 손을 내밀어 서로를 예우하는 모습으로 큰 감동을 줬던 댄스 서바이벌이었다. 7년 간 스승과 제자로 함께 활동하다 갈라져 라이벌 무대에 서게 된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1대1 대결은 단적인 사례였다. 리헤이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허니제이가 먼저 다가가 상대를 포옹했고 그걸 보는 모두가 크루를 떠나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라는 허니제이의 그 멘트가 화제가 된 건, 치열히 경쟁하지만 대결이 끝난 후에는 결과에 승복하고 그들 모두가 결국은 ‘같은 댄스 신’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이라는 사실이 그 발랄한 말 속에 담겨 있어서였다.

경쟁자가 또한 동료이기도 하다는 건 이미 갖가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심지어 악의적인 대결구도를 통해 이용하곤 했던 장치이기도 했다. 즉 같은 팀으로 함께 한 출연자들을 이제는 서로를 무너뜨려야 하는 대결상대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최근 방영된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 ‘순정파이터’가 1대1 데스매치에 형 동생처럼 서로를 아끼던 오천만과 송파경찰관의 대결을 붙인 건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여기서도 경기 후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훈훈한 감동 그 자체였다. 경기는 오천만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평소 형처럼 챙겨줬던 송파경찰관 앞에서 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오천만을 송파경찰관은 형처럼 다독여줬다.

‘경쟁사회’라는 말이 실감나는 우리 사회의 치열함은 갖가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예능가에 쏟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연애도 서바이벌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상금을 경쟁적으로 올리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트로트 오디션의 경우 종갓집이라고 할 수 있는 TV조선의 ‘미스터트롯2’가 우승상금으로 5억 원을 걸었고, 그 경쟁 프로그램으로 새로 시작한 MBN의 ‘불타는 트롯맨’은 기본 3억 원으로 시작해 상금이 누적되는 룰을 적용해 현재 누적 5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역시 서로 경쟁하면서 생겨난 일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에서 승패에 승복하고 상대를 예우하는 모습이 오히려 화제가 되고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는 건 왜일까. 그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승패가 단순히 우열을 평가하는 건 아니며, 나아가 그러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일이다. 물론 결과 지상주의와 승자독식으로 치닫는 현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 안에서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발견하고픈 욕망이 그것이다. 실로 정치판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네 사회의 경쟁적 현실은 과정은 없고 결과만 중요하다는 듯이 승패에 집착한다. 또 승자의 예우나 패자의 인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은 우리를 매일 같이 경쟁으로 내몰고 있지만, 그런 우리들 모두가 또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료이자 이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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