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의 비극에 고개 숙이다[검찰 왜그래]

5·18 민주화운동, 4·3 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 구제 고삐
"오류 바로잡을 용기와 겸허함"…이원석 총장 의지담겼나
"국민 억울함 해소에 진영 배제"…한동훈 장관도 힘 보태
  • 등록 2023-05-20 오전 10:10:10

    수정 2023-05-20 오전 10:10:10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검찰이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 구제 조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보수 정권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졌던 과거의 비극을 검찰이 적극적으로 살피면서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3월 24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1년간 검찰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검찰에서 ‘혐의인정’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한 사건들을 재검토해 61명의 처분을 ‘죄안됨’으로 변경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고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온 피해자들은 42년만에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대검찰청은 1968년 동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납북됐다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어부 100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라고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습니다. ‘재심’은 명백하게 잘못된 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제도를 일컫습니다.

피해 어부들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이듬해 남한으로 간신히 귀환했지만, 정부의 심문을 받고 반공법 위반죄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어부들은 1여년만에 석방된 뒤에도 반공법 위반 낙인이 찍힌 탓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번에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게 되면서 피해자 측은 스스로 소송을 준비하는 어려움을 덜고 신속한 피해·명예 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검찰은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가 유죄판결을 받은 제주 4·3사건 피해자 명예 회복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군사재판을 받은 수형인 중심으로 재심을 청구해 성과를 거둔 검찰은 앞으로 일반재판을 받았던 수형인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습니다. 일반재판 수형인은 1500여명으로 추정됩니다.
이원석 검찰총장 (사진=대검찰청)
이러한 검찰의 과거사 피해 회복 노력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남 보성 출생인 이 총장은 어린 시절을 광주에서 보내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보고 겪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만큼 아픈 역사 치유에도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는 게 법조계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이 총장은 공개석상에서 반성과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놨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부터 “재판과 형집행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되, 혹시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다면 겸허히 지적을 수용해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지난 1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는 “진실과 정의만을 추구한다는 바른 신념이 있다면, 자신의 오류를 즉시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와 겸허함이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6일엔 일선청에 신속한 과거사 피해자 구제를 지시하며 “검찰의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수 있다,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이뤄졌던 일들을 반성한다”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국민을 근거 없이 간첩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유족과 국민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해 현장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탈(脫)진영 행보도 과거사 피해자 구제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 장관은 지난해 인민혁명당사건 피해 유족의 수억원 지연이자를 면제한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데 진영논리나 정치 논리는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법무부는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72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항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공무원 조직은 책임회피 측면에서 기계적으로 항소해온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조치입니다. 덕분에 21년 동안 억울한 수감생활을 했던 피해자들은 신속하게 배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한 장관의 이러한 행보는 개인적인 소신뿐만아니라 여론의 흐름을 읽는 정치적 감각까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각에선 야권 비리 의혹 전방위 수사에 속도를 높이는 검찰이 과거사 피해자 구제로 부정적인 여론을 중화시킨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한편 법무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성과 발표에서 “그간 국가를 상대로 오래도록 고통받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에 대해 상식과 정의에 맞는 결정을 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진영논리를 초월해 오로지 상식과 공정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결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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