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소설가인 윌리엄 깁슨은 그의 소설 뉴로맨서에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미래는 이미 와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챈 사람과 못 알아챈 사람 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죠.
어떤 사람은 챗GPT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관심밖인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현상을 받아들이는 반응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미래의 수준차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느 유명 정치인이 플랫폼을 보고 ‘서버 몇 대 놓고 통행세 받는 것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순간 “저런 정치인들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구글이나 아마존, 메타(구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없구나”라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의자를 디자인해서 보여줘?” 라는 질문의 결과와 “인간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디자인해줘!”라는 질문에 인공지능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이솝우화인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유명 철학자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새롭게 써달라고 하면 멋지게 그들의 관점으로 새롭게 써냅니다. 이제 질문의 가치가 정답의 가치보다 훨씬 중요한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인 야마구치 슈는 그의 저서 ‘뉴타입의 시대’에서 정답보다는 질문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가 오고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제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챗GPT기반의 확장프로그램들이 계속 출시되면서 인공지능이 바꿀 세상의 영토는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구글로 검색을 하면 옆 창에는 챗GPT의 견해(?)가 표시되고, 유튜브의 내용을 분석해 스크립트를 표시하는 것은 물로 그 내용까지 요약해 줍니다. 정보의 압축이 더 압축되는 거죠. 또한 챗GPT를 통해 시나리오를 쓰면 그것을 받아 동영상을 자동으로 제작해주기도 합니다. 정말 인공지능이 열어줄 미래가 어디까지인지 감을 잡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제 임진왜란이 몇 년에 일어났느냐는 식의 암기중심 교육은 조만간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슬기롭게 질문할 것인지에 대한 능력이 더 떠오르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롭게 열리는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입니다. 그 질문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