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낙태권 49년만에 폐기 파장…원정·불법 시술 혼란 클듯

미 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었다
"미 50개주 중 절반은 낙태권 박탈할듯"
불법 시술, 국경 넘는 원정 낙태 가능성
미 정치 공방 넘어 세계적으로 논쟁 가열
  • 등록 2022-06-26 오전 10:37:41

    수정 2022-06-26 오후 9:26:03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서 브로드웨이와 파크애비뉴, 14번가가 만나는 중심부 광장인 유니언 스퀘어는 낙태권 옹호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많은 시위자들은 ‘부당한 판결’(Unjust decisions)이라는 피켓을 들고 울부짖었다. 맨해튼에서만 시민 수천명이 낙태권 폐지 판결을 주도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뉴욕시 브루클린의 켄싱턴에 사는 엠마 핸들러(27)씨는 “선출되지 않은 몇몇 대법관들이 우리의 삶, 건강, 행복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암흑과도 같다”며 “슬프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낙태 금지를 환영하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았다. 테네시주 프랭클린에 사는 셰리 스트리트(67)씨는 NYT에 “드디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며 환영했다. 스트리트씨는 가까운 친척이 낙태를 한 이후 후회했다는 경험을 전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낙태 때문에 마음에 걸렸다”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콜로라도주의 낙태권 옹호 비영리단체 지사 앞에서 이번판결을 환영하는 시민들과 그렇지 않은 시민들이 뒤섞여 시위를 벌이다가 일부는 서로 충돌했다”며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고 전했다.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은 소식을 다룬 뉴욕타임스(NYT) 25일자 1면이다. 낙태 반대론자들(사진 위)과 낙태 반대론자들(사진 아래)의 표정이 극명하게 엇갈려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미국서 낙태 금지법 가능해졌다

미국 대법원이 연방 차원에서 보장했던 낙태권을 폐기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당장 미국이 둘로 쪼개져 낙태권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앞으로 불법 시술과 원정 낙태가 횡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낙태 이슈는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인 만큼 중간선거의 화두로 급부상할 게 유력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미국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3 의견으로 합헌 판결했다. 1973년 당시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은 낙태를 공식 합법화한 판례였는데, 이를 49년 만에 뒤집고 공식 폐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49년 전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고, 이에 미국 각 주의 낙태 금지 입법은 사실상 사문화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과 상충하는 미시시피주 법에 대한 심리에 들어가면서, 이번에 결국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전체 9명의 연방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평가 받는 게 영향을 미쳤다. 반대한 대법관들은 소수의견을 통해 “헌법적인 보호를 상실한 수백만 미국 여성들을 위해 반대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 인정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주 정부와 주 의회로 넘어갔다. CNN은 “전체 50개주 가운데 절반은 낙태 권리를 박탈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중 6개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시행하도록 조건부 규정을 담은 낙태 금지법을 이미 마련했다”고 전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는 26개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대부분 공화당 우위 지역들이다.

미 넘어 전 세계 찬반 논쟁 가열

이번 결정으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낙태 규제가 주별로 달라짐에 따라 임신한 여성이 낙태가 허용되는 주로 이동하는 원정 시술이 횡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정 시술이 여의치 않은 이들의 경우 무허가 시술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 국경을 넘을 조짐까지 있다.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에는 미국 여성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낙태를 위해 국경을 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멕시코와 육로로 국경을 접한 보수 성향의 텍사스주는 낙태 금지가 기정사실화돼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로 대(對) 웨이드’ 공식 폐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항의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이와 동시에 낙태권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로 급부상하게 됐다. 낙태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주요 의제인 만큼 공화당과 민주당간 시각차는 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대국민 연설을 하면서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번 판결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지지하는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지율이 사상 최악으로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이슈화에 나설 유인이 높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하루 뒤인 25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대법원의 결정은 우리 직장 내에서, 또 전 세계적으로 우려와 의문을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서 “(이번 판결은) 헌법에 따른 것”이라며 “결국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 역시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미국을 넘어 국제사회까지 찬반 논쟁을 벌일 분위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라고 주장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낙태권을 잃을 수 있는 수백만 미국 여성들에게 마음을 보낸다”고 비판했다. 반면 교황청은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큰 나라가 낙태에 대한 입장을 바꾼는 것은 전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은데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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