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상원의장, 아들은 총리…'캄보디아판 3대 세습'까지?

[글로벌스트롱맨]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
총리 퇴진 반년 만에 상원의장으로 복귀 확실
아들 3형제는 총리·軍 부사령관·부총리
아이폰부터 콘돔까지 캄보디아 이권 독점
  • 등록 2024-03-02 오전 11:00:00

    수정 2024-03-02 오전 11:00:00

세계엔 다양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같은 정치를 두고도 누군간 독재, 누군간 강력한 카리스마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쎈캐(스트롱맨)’들을 통해 그 나라를 알아보고 한국을 돌아봅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이변은 없었다. 캄보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치러진 상원의원 선거에선 1차 개표 결과 여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이 민선의원 58석(총 62석 중 4석은 관선의원) 중 55석을 얻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가 유력 야당인 촛불당에 대해 후보 공천조차 금지하면서 이번 선거는 ‘하나 마나 한 선거’가 됐다. 인민당은 지난해 하원 선거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통해 125석 중 120석을 싹쓸이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상원의원 선거 후 지방의원과 인사하는 훈 센(왼쪽) 전 캄보디아 총리.(사진=AFP)


“2030년대엔 총리 할아버지 되겠다”

인민당이 상원 선거에서도 이기면서 인민당 의장이 훈 센 전 총리가 상원의장을 맡게 됐다. 그전까지 상원의장은 명예직에 지나지 않았으나 훈 센이 상원의장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훈 센은 직전 총리이자, 훈 마넷 현 총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장남인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이선으로 물러났다. 차남 훈 마닛은 캄보디아군 부사령관 겸 정보부대장, 막내아들 훈 마니눈 부총리를 맡고 있다.

캄보디아 왕국에 진짜 왕실보다 더 강력한 ‘훈센 왕조’가 열린 셈이다.

훈센은 “(나는) 2023년 이후에는 총리의 아버지가 되고 2030년대에는 총리의 할아버지가 될 것”이라며 세습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캄보디아 정치평론가 메아스 니는 훈 센의 상원 입성으로 훈 센 일가는 의회 내 고위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더 강화했다고 닛케이아시아에 말했다.

지난해 총리직에서 물러나기 전 훈 센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였다. 1985년부터 38년 동안 캄보디아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훈 센은 극렬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루즈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친미 론 놀 정권에 맞서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1975년 프놈펜까지 장악한 크메르루즈는 반공 세력과 지식인 등 최소 170만명을 학살하는 이른바 ‘킬링필드’를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갈수록 과격해지는 크메르루즈와 이견이 생긴 그는 숙청을 피하기 위해 1977년 베트남으로 망명한다.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다. 크메르루즈가 툭하면 베트남 국경지역을 공격하고 자국 내 베트남계 주민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후 ‘인도차이나 반도의 맹주’를 노리던 베트남으로선 좌시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1978년 12월 25일, 15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캄보디아로 진격시킨 베트남군은 보름도 안 된 1월 7일 프놈펜을 점령했다.

그해 캄보디아엔 헹 삼린을 총리로 하는 친(親)베트남 정권을 세워졌는데 베트남군과 함께 캄보디아에 돌아온 훈 센이 외무장관이 됐다. 당시 26살로 전 세계 최연소 외무장관이었다. 크메르루즈 잔당 소탕을 주도하며 권력을 키우며 실세로 부상하던 훈 센은 1985년 총리가 됐는데 당시 33살로 역시 전 세계 최연소 총리였다.

1997년 훈 센.(사진=AFP)


왕실도 허수아비 만든 ‘진짜 상왕’

이후 훈 센은 38년 동안 총리직을 움켜쥐고 있었다. 1993년 왕정 복고를 앞두고 열린 선거에서 왕당파 정당인 푼신펜에 1당을 내주고 제2총리로 물러나기도 했지만 1997년 쿠데타를 일으켜 노로돔 시아누크 당시 국왕의 아들이자 제1총리였던 노로돔 라나리드를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했다. 이로써 훈 센과 왕실 중 누가 캄보디아의 진짜 권력자인지가 판가름났다.

총리를 지내며 훈 센은 농지 개혁과 국영기업 민영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자 유치 등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크메르루즈 축출도 훈 센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EIU) 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캄보디아는 선거 절차·다원주의 부문에서 북한과 같은 0점을 맞았다. 2017년엔 제1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자 반역죄를 씌워 아예 해산시켜버렸다. 지금까지 캄보디아에서 야당다운 야당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다.

부패도 훈 센의 유산이다. 전기·통신 등 기간산업과 언론, 아이폰·위스키·콘돔 수입권까지 모두 훈 센 일가가 차지하고 있다.

훈 센(왼쪽)과 훈 마넷(오른쪽) 캄보디아 총리.(사진=AFP)


‘유학파’ 훈 마넷, 아버지 그늘 벗어날 수 있을까

서방에선 그나마 훈 마넷이 변화를 일으켜 주길 바란다. 훈 마넷은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와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각각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보단 더 개방적이고 친서방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부정선거를 이유로 캄보디아에 대한 지원 일부를 보류하기로 했는데 이를 곧 번복했다. 여기엔 훈 마넷에 대한 기대감이 담겼단 평가다. 훈 마넷 역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등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카트린 트라부용 호주 국립대 교수는 “서구식 교육을 받고 개방적이고 사회적 의식을 갖춘 인사들이 캄보디아로 돌아와 정부 요직을 맡아 정책과 행정을 개혁, 내부로부터의 진보적 개혁을 촉진하고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매력적이다”고 동아시아포럼 기고에서 설명했다.

상왕으로서 훈센이 건재한 한 훈 마넷의 운신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훈 센은 총리 퇴임 직전 “내 아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면 내가 총리직에 돌아와 다른 후계자를 찾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슈아 컬란츠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지금으로선 훈 마넷에게 캄보디아를 개혁할 계획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며 “그는 고위 관료와 재벌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부정행위를 저질러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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