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죽으라는 건가요"…미뤄지는 수술, 피마르는 환자들

길어지는 의정갈등에 병 깊어질까 ‘전전긍긍’
말기암 환자, 치료 못 받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정부, PA간호사 제도화 등 의료공백 대책 발표
대책 효과 못 보는 환자들 “근본적 해결 시급”
  • 등록 2024-04-23 오후 4:32:09

    수정 2024-04-23 오후 4:32:09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피가 마른다는 표현이 딱 지금 같아요.”

60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이모(34)씨는 지난달 예정됐던 아버지의 신장암 수술이 연거푸 미뤄지면서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3기인 탓에 다른 곳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수차례 문의를 했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이씨는 “적어도 예정됐던 것은 해결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매일 뉴스만 보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두 달이 넘은 23일, 그 여파는 환자들이 오롯이 떠안고 있다. 암 환자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수술 날을 기다리며 전이를 걱정하고 있고, 말기 암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환자들은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은 겪고 있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의정갈등이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 및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술 연기되고 치료 못 받고…불안한 환자들


앞서 몇차례 암 치료를 받은 바 있었던 A씨는 지난달 11일 유방양성종양 절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료대란이 불거진 이후 병원에선 (악성이 아닌) 양성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일방 연기했다. 그는 “내가 가진 희귀질환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이미 암을 2번 앓았기 때문에 너무 불안하다. 빨리 수술해주면 안되나 생각이 든다”고 호소했다.

특히 항암치료 기다리는 환자들은 혹시나 암이 퍼지거나 애써 시작한 항암치료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상급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은 B씨는 수술 후 방사선을 하기로 했으나 전공의 사직 이후 무기한 연기됐다. B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2차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으나 방사선 치료을 할 여력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 B씨는 “사태가 종결되면 추후 다시 논의하자는 이야기만 들었다”며 “누가 반쪽짜리 치료를 원하겠는가”라고 울상을 지었다.

심지어 말기암 환자들은 병원이 사실상 치료에 손을 놓으면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변인영 췌장암환우회 대표는 “수술 이후 재발을 한 뒤 전이가 돼 4기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며 “제대로 된 병원 환경이었다면 항암치료를 받고 더 많은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장기 폐색이 왔다. 병원에서는 ‘호스피스를 알아보라’는 말을 했다. 그냥 죽으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오는 25일 이후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진다면 환자들은 불안감을 넘어 절망감을 느낄 것이라고 호소했다. 변 대표는 “설마 환자들의 마음을 제일 잘 알고 계신 교수님들이 환자들을 버리고 갈까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며 “결국 환자들을 버리고 간다면 중증환자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교수님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 교수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암진료협력병원 등 대책 발표에도 “실효성 의문”

전공의들의 사직 이후 이 같은 사태를 예견한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다. PA간호사 제도화를 시작으로 △공보의·군의관 투입 △요양기관 의약품 처방 급여요건 한시적 완화 △암진료협력병원 운영 △개원의 상급종합병원 진료 등 대책을 내놨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다른 인력으로 메우고 상급종합병원에 몰린 수요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환자들은 정부의 이같은 대책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특히 암진료협력병원의 경우 큰 실효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항암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상급종합병원과 일반 병원들이 가진 노하우와 대처법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지금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긴 하겠지만 장 유착이 된다거나 협착이 오거나 그런 경우 과연 협력병원에서 대응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대신 투입되고 있는 PA간호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60대 박모씨는 “과거 의사들이 했던 일을 간호사가 쉽게 대체할 수 있다고 하면 의사들이 그렇게 길게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뭐겠냐”라며 “믿음이 가지 않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변인영 대표 역시 “치료를 받다보면 의외의 부분에서 합병증 등이 발생하는데 그런 부분은 교수들이 봐줘야 한다”며 “믿는다기보단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인 의정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환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 시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 사태의 조속한 해결”이라며 “현 사태의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부와 의료계 모두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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