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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해외에 머무는 동안 그 나라에 계엄령이 선포돼 무장한 군인들이 도심을 활보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지난 3일 계엄군의 국회 진입 장면을 TV로 지켜본 우리 국민도 놀랐지만 한국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외국인이 겪은 충격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한 외교공관들이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각국 외교 당국이 한국을 여행 위험 국가로 지정한 것도 수긍이 간다.
국내 체류 중국인들은 한국인에게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담화에서 “중국인이 부산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하다 적발됐는데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거나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며 반중 감정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올 11월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264만1273명) 가운데 한국계를 포함한 중국 국적자 비율은 36.4%로 으뜸이다. 국내 유학생이나 관광객도 2위고, 재외동포(708만1510명) 중 미국(36.9%) 다음으로 많은 29.8%가 중국에 산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2년간의 외교 성과를 자평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공조는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엄령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정부가 가치 동맹의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계엄령 선포는 45년 만이다. 21세기 이후에는 미얀마, 태국,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 일부 권위주의 국가나 전쟁 중인 나라에서만 계엄령이 선포됐다. 여기에 외국인이 인구의 5%를 넘는 다문화 사회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외 의존도 3위인 글로벌 국가 한국이 가세한 것이다. 얼마나 뜬금없고 황당한 일인가.
그러나 여전히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가 마치 여야 공방으로 비화해 지지부진해지는 느낌이다. 인터넷에는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중국인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됐다는 루머가 나도는가 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탄핵 집회를 응원하거나 계엄 비판 글을 남기는 것이 친중·친북 활동이자 반미 행위라고 주장하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신고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계엄령 주모자와 옹호론자들의 발언을 보면 오만, 독선, 불신, 편견, 배타, 혐오 등의 감정이 짙게 깔려 있다. 계엄은 피땀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 질서를 뿌리째 흔들고 어렵사리 가꿔온 관용과 공존과 연대의 다문화 가치를 훼손한다. 서둘러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단죄해 피해와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재발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