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강아지에게도 카드가 발급된다는 말이 우습게 회자될 정도였던 2003년의 카드대란 사태가 다시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카드대란 직전의 2002년에 경제활동 인구 1인당 카드수가 4.6장이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그 우려가 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카드 발급이 최근 급증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을 꼽을 수 있다. 과당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업들의 경쟁으로 인해 주어지는 여러 혜택이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늘어난 혜택을 즐기려다 자신의 카드 사용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동원하는 소재도 대단히 다양하다. 카드를 사용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은 단순히 물질에만 그치지 않는다. 쇼핑을 통한 자신감과 쾌락을 강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카드로 부부간의 사랑과 아이의 미래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환상도 불어넣는다. 생활에 지친 배우자에게 ‘마음대로 써’, ‘좋은 것 먹고 다녀’라는 말과 함께 카드가 등장한다.
교육 중 만난 어느 직장인도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부인에게 마이너스통장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매월 돈에 쫓기지 말고 살아.’ 대단히 감동적인 이벤트임이 분명하지만 현실을 직시해보면 ‘돈에 쫓기지 말고 빚내서 돈써’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신용카드를 선물로 주고 마음대로 쓰라는 말과 그 선물에 감동받는 모습을 그린 광고는 지나치게 훌륭해서 위험하다. 세상의 모든 아내와 남편들이 공감할 법한 좋은 배우자 상을 카드 한 장에 담아낸 것은 카드 발급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현실은 매월 월급을 탈 때마다 가까스로 카드값을 결제하면서 혹은 소득을 뛰어넘는 달콤한 카드 소비로 인해 카드 돌리기를 하면서 신용카드의 복수를 경험한다. 신용카드의 복수는 2003년 무려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지독한 채권추심의 경험을 하게 했다.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 같지만 결국 행복이 아닌 불행을 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