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차량 공유 서비스를 선도한 ‘우버’, 숙박 공유 문화를 확산시킨 ‘에어비앤비’,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구글의 기업형 벤처투자회사(CVC)인 구글벤처스(Google Ventures)가 초기에 투자한 업체라는 점이다. IT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은 기존 구글 기술을 보다 발전시키는 동시에 투자 이익도 달성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CVC를 활용하고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조 기업이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물건만 팔아야 한다는 개념은 시대착오적”이라며 “투자와 기술개발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작년 CVC 투자 규모 2배 급증
CVC는 글로벌 기업들이 구글벤처스처럼 전략적 투자를 하기 위해 설립한 투자전문회사다. 모기업과의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한다.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은 물론 인텔(인텔캐피털), 세일즈포스(세일즈포스벤처스), 퀄컴(퀄컴벤처스) 등이 CVC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 리서치회사인 CB인사이츠(CB INSIGHTS)가 집계한 지난해 글로벌 CVC 투자규모는 1693억달러(약 215조)로 사상 최고치였다. 2020년(701억달러)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전 세계 벤처캐피털 시장에서 CVC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CVC가 참여한 투자 건수도 2020년 3356건에서 지난해 4661건으로 증가했다. 벤처캐피털 시장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은 전체 벤처케피털 투자 규모에서 CVC의 투자 비중이 거의 절반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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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CVC 설립과 관련한 별다른 규제가 없다. 설립 방식과 펀드 조성 관련 사전 규제가 없어 각 기업이 자사 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CVC와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구글벤처스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들고 있고, 외부조달 없이 알파벳이 투자금을 전액 부담한다. 알파벳은 또 다른 CVC인 ‘캐피털G’를 하나 더 소유하고 있다. 구글벤처스가 주로 초기 창업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캐피털G는 상장 직전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 투 트랙 방식을 쓴다. 캐피털G도 알파벳의 100% 자회사에 100% 내부 자금으로 투자가 이뤄진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자본시장이 발달해 지배주주가 사익을 편취할 경우 다중 대표소송제와 징벌적 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CVC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도 CVC 관련 특별한 규제는 없다. 다만, 미국과 달리 외부 펀딩도 가능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CVC인 레전드 캐피털은 레전드 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2011년에 결성한 RMB 펀드Ⅱ에는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와 함께 국민연금 격인 전국사회보장기금이사회, 에너지 회사인 시안 샨구파워 등이 펀딩하고 있다. 2019년말 기준 레전드캐피털은 9조원 규모의 펀드를 굴리고 있는데, 레전드홀딩스와 계열사들이 펀드에 출자한 비중은 26.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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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들도 CVC 설립에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은 국내보다는 주로 벤처 투자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CVC를 운영하고 있다. 인재와 IT기술, 자본 등의 집합체인 미국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유리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해외 CVC는 별다른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경우 지주회의 CVC 설립과 관련한 제약조건이 많아 기업들이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일반 지주회사도 제한적으로 CVC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사전 규제가 담기면서 ‘무늬만 CVC’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해외의 경우 CVC와 펀드에 정형화된 구조는 없으며, 기업이 각자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며 “CVC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와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CVC 설립과 운용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