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열흘 동안의 미국 출장을 마친 뒤 남긴 소회다. 다양한 함의가 있겠지만, 미중 패권경쟁과 글로벌 경쟁사와의 산적한 변수 앞에서 삼성이 느끼는 부담감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SK 최태원 회장은 직접 집단지성 플랫폼인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을 만들었다. 한미일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국제문제 해결 방안을 역설했다. 정부에는 역으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글로벌 전략을 마련하자며 ‘퍼블릭 프라이빗 파트너십’(PPP·민관 협업)을 제안했다. 지금 이대로는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현실 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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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급망 재편을 놓고 미중이 정면 충돌하는 가운데 ‘경제 안보’는 세계 각국의 도전 과제로 떠올랐다.
미 상무부가 지난 9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주요 기업에 반도체 핵심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장 미국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정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중국 공장 배치에 제동을 걸었다.
요소수 사태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는 ‘한국을 겨냥하지 않았다’며 의도성을 부인했지만 중국이 요소수의 국외 유출을 막아서자 당장 피해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요소수 사태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지만 희토류 등 주요 원자재의 상당량을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제 정세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줘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데, 부처 간 ‘늦장보고’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의식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범정부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절실
정부가 뒤늦게 ‘대외전략안보전략회의’와 외교부 차원에서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외교부는 TF를 ‘경제안보외교센터’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이름 만 놓고 봐서는 이 역시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각 부처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조직만으로는 미중 경제패권 전쟁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항구적으로 보호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이 길어질수록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더 큰 피해가 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일본 ‘경제안보담당실’ 같은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더 언제까지 기업에 희생을 강요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