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고, 성장은 둔화 `스태그플레이션` 온다는데?[궁즉답]

한은, `올해 물가 4%대, 성장률 2%대 중후반` 조정 시사
높은 물가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스태그 우려`는 일축
추경호 부총리 후보자도 "통상적 의미의 스태그 아냐"
경기침체 전제한 스태그보다는 `슬로플레이션` 가까워
학계선 이미 경고…맞냐 안맞냐 공방보단 선제대응 필요
  • 등록 2022-05-05 오전 7:46:54

    수정 2022-09-19 오후 3:44:01

이데일리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질문을 담당기자들이 상세하게 답변드리는 ‘궁금하세요? 즉시 답해드립니다(궁즉답)’ 코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Q. 한국은행이 지난 2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 연간 물가 상승률, 경제 성장률을 3.1%, 3.0%으로 전망한 지 불과 두 달만인 지난 4월 물가는 4% 혹은 그에 가까운 수준으로 오르고 성장률은 2%대 중후반을 기록할 것이라고 조정을 시사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치솟고 성장률은 점차 둔화되고 있는데 왜 물가당국에선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차 오일쇼크가 있던 지난 1970년대 중반,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1980년대 초반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불리죠.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세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길고 높게 지속되는 가운데 성장률 둔화가 이어지는 지금 상황을 과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는가 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단계가 아니란 주장이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그 초입에 들어섰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5%대에 육박한 국내 물가 수준에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분위깁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면서 연간 물가 역시 4%를 웃돌 수 있단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며 국제유가, 천연가스, 곡물 가격 등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미친듯이 오른 영향입니다. 서방권과 러시아의 갈등이 ‘에너지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전쟁이 종식된다고 해도 에너지 가격 상승 흐름이 길어질 수 있단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전환에 따라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물가 대란이 일고 있습니다. 유류세 인하에도 리터당 1900원대를 웃도는 휘발유 값은 물론이고 외식 물가, 식료품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습니다. 치킨 가격은 한 마리에 2~3만원까지 뛰었고, 계란 한 판 가격이 8개월 만에 7000원대로 올랐습니다.

(그래프=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그렇다면 성장률은 어떨까요? 올 1분기까진 수출이 버텨주면서 0.7% 분기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제로(0)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주요 도시를 봉쇄하고, 우크라 사태로 유럽 경기마저 타격을 받으면서 2분기부터 악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란 예상에 올해 성장률 전망은 3%대에서 단숨에 2%대로 주저 앉았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1월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가 3개월 만에 0.5%포인트나 하향한 2.5%로 수정했고, 피치와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2.7%, 2.5%로 우리나라 성장 둔화를 예견했습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던 수출 마저 증가율이 점차 낮아지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1년 전 대비 12.6%에 그쳤습니다. 2021년 4월 수출 증가율이 41.2%를 기록했는데 코로나19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큰 폭의 감소를 나타낸 것입니다. 올해만 놓고 봐도 수출 증가율은 지난 2월 20.6%를 기록한 이후 두 달 연속 둔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한은 측은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전제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오름세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이어가겠으나 국내 경기 회복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국내외 물가 여건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물가 상방(상승)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통상적 의미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성장 둔화가 이어지고 있고 고(高)물가로 인한 매수 부진 등 경기 충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단 목소리도 점차 커집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현경연) 경제연구실장은 지난 1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 이슈에서 물가·환율·금리 등 3고 현상 지속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슬로플레이션(Slow growth+Inflation)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하반기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공급 충격에 의한 물가 압력이 크고 경기 코로나19 기저 효과를 감안하면 2%대는 경기 부진 국면이라고 할 수 있어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의에 집착할 게 아니라 급등한 물가가 성장률을 갉아 먹지 않도록 정책적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조언을 건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같이 비관적인 전망에 집중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세계은행, IMF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세계은행은 최근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가 향후 3년 동안 저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인더미트 길 세계은행(WB) 부총재는 “무역, 생산, 소비에 차질이 생기고 있고 이 같은 지금의 상황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다시 부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단순히 스태그플레이션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하기 보다는 대내외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물가와 성장률 전망에 대한 좀 더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을 통해 위기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물가당국이 ‘누군들 전쟁을 예측했겠느냐`고 반문 한다면 책임을 따져 묻기 어렵겠지만, 한 번 오른 물가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 만큼 서민들의 고통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선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던 물가-임금 상승의 ‘2차 효과’ 위험을 금통위원들이 언급할 정도니 ‘만약의 사태’까지 고려한 정책 대응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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