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소소리’는 조선 중기 명필로 잘 알려진 조위한이 1621년에 쓴 소설 ‘최척전’을 원작을 각색한 연극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병자호란을 거치던 전쟁 상황에 최척과 옥영 그리고 그 가족들이 겪게 되는 이별과 만남의 이야기를 담았다. 최척과 옥영은 그저 평범하게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았을 수도 있는 부부였다. 함께 달밤에 주막에서 한 잔씩 걸치고 최척은 퉁소를 불고 옥영은 거기 맞춰 시를 짓는 그런 행복한 부부의 삶 말이다.
임진왜란 시기 최척은 의병으로 차출돼 가면서 혼례를 약속한 옥영과 아픈 이별을 하게 된다. 옥영의 엄마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최척을 잊고 돈 많은 다른 집 자제와 혼인하라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굳건해 겨우 혼례를 치른다. 몽석이라는 사내아이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정유재란이 터지면서 피란길에 오르다 이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최척은 가족이 모두 죽은 줄 알고 실의에 빠진 채 명나라 군사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가게 되고 옥영은 남장을 한 채 왜적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가게 되지만 마음씨 착한 상인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남는다. 중국에서 천지를 유랑하며 떠돌던 최척은 거기서 만난 중국인 친구와 바닷길로 장사를 하러 다니다 안남(베트남)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퉁소를 부는데 익숙한 시구가 들려온다. 그건 다름 아닌 옥영이 어느 달밤에 읊조렸던 시구다. 최척은 기적적으로 옥영을 만나고 함께 명나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조선 시대에 썼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조선, 중국, 일본, 베트남까지를 오가는 엄청난 대서사를 담고 있지만 ‘최척전’이 포착하고 있는 건 전쟁 같은 거대서사 속에 대부분 가려지곤 하는 실제 민중들의 치열한 삶이다. 지금도 전쟁이 터지면 병력 몇십 만으로 퉁쳐지는 그런 표현 속에 가려지곤 하는 누군가의 아들, 딸이 있었고 그들은 그 빗발치는 운명의 화살 속에서 저마다 절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약 400년 전의 ‘최척전’이 소설을 빌려 보여주려 한 게 바로 그것이고, 현재 그 작품을 가져와 그런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게 연극 ‘퉁소소리’다.
그래서 무려 세 개의 전쟁이 겹쳐져 있는 그 긴 서사를 통해 끝내 ‘퉁소소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승리하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대신 ‘살아 있으라’는 것이다. ‘버텨내라’는 것이다. 때론 버텨내는 것조차 힘겨운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이 작품은 말한다.
그렇다. 자식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게 된 부모들 중 그 누구도 그 자식이 어떤 성과를 내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몸 건강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대체 승리나 성취가 뭐 그리 중요할까. 그러니 아들아. 이 아비는 바랄 게 없다. 무사히 마치고 몸만 건강히 돌아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테니.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