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연 "순수문학 새시도 NFT 시집...수집가에게 매력적"

시집 '쥐와 굴' 초판 NFT, 경매서 900만원 낙찰
"높은 가격 낙찰 깜짝 놀라"
"순수 문학 새로운 형태 탐색 차원서 기획"
"새로운 세대에겐 가상세계 존재감 훨씬 커"
  • 등록 2021-06-15 오전 6:00:00

    수정 2021-06-15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현대문학이라는 국내 제도권 출판사에서 시집 1쇄를 NFT화 한다는 것이 수집가들한테 투자상품으로서 매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수연 시인(사진=배수연 시인)
국내 처음으로 시집을 NFT(대체불가능한 토큰)로 발행해 경매에 내놓은 배수연 시인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소감을 밝혔다.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한 배 시인은 자신의 세번째 시집 ‘쥐와 굴’(현대문학)의 초판본을 NFT로 발행해 지난달 25일부터 5일 오후 3시까지 가상자산 경매 사이트 오픈시(Opeansea)에 올렸다. NFT를 발행해 올릴 때까지만 해도 출판사 측과 ‘팔리긴 할까’ 하며 걱정을 했다. 우려와 달리 작품은 오픈시의 거래에 사용되는 가상화폐 이더리움 기준으로 일주일도 안돼 1.5이더(ETH, 약 450만원)까지 올랐다. 경매 마감 30분 전부터는 2명의 참여자가 경합을 벌여 경매 시간이 30분 가량 늘어나기도 했다. 최종 낙찰가는 2.94이더(ETH, 약 900만원)로 종이책 9000원의 1000배에 달했다. 배 시인은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쥐와 굴’ 초판 NFT 발행은 배 시인이 먼저 출판사에 제안했다. 최근 NFT시장을 보면서 예사롭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미디어 환경을 변화시켰듯, NFT가 순수예술, 출판시장까지 바꿀 거란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아직은 접근성이 낮지만 개인 창작자가 창작물을 전 세계를 무대로 직접 소개·판매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꼈다. 그는 “초판 NFT 발행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며 “게임 아이템·트레이딩 카드·디지털 아트가 대부분인 NFT 시장의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순수문학의 새로운 형태를 탐색하는 차원에서 기획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전자책과 NFT작품의 차이점을 묻자 배 시인은 “전자책은 기존 종이책을 보던 사람들이 주요 구매층이라면, NFT작품은 출판 시장 독자와는 소비계층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전자책은 독자들이 책을 읽기 위해 구매를 한다면, NFT작품은 책을 읽기보단 그 자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시집을 산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평소에 시를 사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며 “NFT 세계에서 출판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구매를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 시인이 변화를 더욱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던 건 현재 서울 마포구 상암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가상세계가 익숙한 10대 학생들과 생활하며 이 세대의 실제 세계에 대한 인식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한번은 배 시인이 학생들과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옆에 있는 친구와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봤다. 윗세대들은 눈앞에 있는 친구와 소리 내서 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매체 때문에 인간관계가 부실해지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 시인은 “실제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우정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에겐 가상세계가 실제 세계보다 훨씬 존재감이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배 시인은 앞으로 NFT작품 시장은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디지털로 소유하고, 가상 공간에서 그것을 공유하고 과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어떤 아이템이 얼마에 거래됐느냐는 사실이 화제가 되는 시기를 지나 창작자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양질의 창작물을 소개하고, 감상자는 이를 수집하고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배 시인은 이번 경매 수익금을 전액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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