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이라 기자]3년 전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6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직장인 S씨(38·서울 강서구 화곡동)는 최근 만기연장을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담당직원이 만기연장을 조건으로 한 달에 50만원씩 10년간 납입해야 할 저축성보험 상품의 가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S씨는 실랑이 끝에 결국 매달 30만원씩 내야 할 적금 상품에 가입한 후에야 간신히 만기연장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연체 한번 없이 성실하게 이자를 납부해서 만기연장엔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며 “대출이자 갚기에도 벅찬데 다른 금융상품 가입까지 압박하는 건 은행의 횡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예·적금이나 방카슈랑스 등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구속성예금 이른바 ‘꺾기’ 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가산금리 부풀리기 논란 등으로 은행권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지만 은행권의 구태는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은행들은 아파트 값 하락에 따른 담보인정비율(LTV) 상승 등으로 대출상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대출자들에게까지 ‘꺾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가뜩이나 심화된 가계대출 부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꺾기, 영업점에선 여전히 관행..적발은 미미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기업, 신한, SC 등 8개 시중은행에 대한 테마검사 결과 2009년 9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총 943건, 330억원 상당의 ‘꺾기 행위’를 적발했다. 은행권은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행위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일선 은행창구에선 이미 과도한 범위를 넘지 않는 수준의 ‘꺾기’ 영업은 ‘교차판매’의 일환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대출 만기연장을 심사할 때 해당 고객의 예·적금과 방카, 펀드 등의 가입현황을 분석해서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며 “대출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설령 감독당국에 적발되더라도 과태료가 최고 5000만원에 불과하다 보니 큰 부담없이 ‘꺾기’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 이자내기도 벅찬데 금융상품 가입까지 ‘이중고’
꺾기는 은행권의 오래된 관행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자들에게까지 추가로 부담을 지우며 결과적으로 가계대출 부실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만기가 도래하거나 거치기간이 끝나는 주택대출잔액만 약 80조원, LTV 한도를 초과한 대출잔액은 44조원(3월말 현재)이 넘는다.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만기연장을 지도하고 있지만 일선 은행창구에선 이들 대출자들에게까지 만기연장을 고리로 금융상품을 끼워 팔고 있다. 40대의 한 고객은 “대출을 만기연장할 때마다 방카니 카드니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한다”며 “말이 권유지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 살림살이도 빠듯해 이자 갚기에도벅찬데 매달 30만∼40만원씩 추가로 불입하는 건 무리”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은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향후 꺾기를 하다 적발될 경우 기관 및 임직원에 대한 제재수준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위반행위 건별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김병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꺾기는 돈을 빌려주는 갑인 은행과 돈을 빌려야 할 을인 서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행이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가 없으면 근절이어렵다”며 “감독당국으로선 규제수위를 더욱 높이고 주기적으로 감독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꺾기’
은행이 대출실행일 전후 1개월 이내에 대출금액의 1%를 초과하는 예·적금 등 금융상품의 가입을 강요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령 고객이 1000만원을 대출받을 경우 대출을 조건으로 월 10만원이 넘는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할 경우 ‘꺾기’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