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국내외 불확실성 고조에 따른 경기악화 대응책으로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마저 조속한 추경 편성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로 경기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다만 추경 편성권을 쥔 정부로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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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일단 내년도 본예산의 조기 집행에 초점을 두겠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1월부터 예산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집행을 준비하는 게 최우선”이란 입장을 되풀이 중이다. 내년엔 673조 3000억원 규모의 예산 중 75%를 상반기 중에 집중 배정하겠단 뜻도 밝혔다. 최 부총리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 인식엔 동의한다”면서도 추경 편성 여부엔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당초 ‘내년 초 추경설’은 지난달 대통령실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이후 대통령실은 물론 당정도 “논의·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해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지만, 야당은 추경론을 지렛대 삼아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감액안으로 처리하는 초유의 강수를 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일단은 너무 늦지 않게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되, 추가 논의를 거쳐 추경을 편성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부에 끊임없이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 안에도 내수 부진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이 필요하단 인식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몹시 복잡하다.
먼저는 추경 편성 시 ‘건전재정’을 모토 삼아온 윤석열정부의 정책기조에 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가 이어진 터라 추경을 하려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건전재정은 무색해지는 셈이다.
내수 부진이 추경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강조해온 점도 걸림돌이다.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은 △경기침체 △대량실업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할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이다. 그럼에도 고육지책으로 추경을 택한다면 정부는 ‘자기부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고민 지점은 과반의석을 가진 야당이다. 추경은 본예산과 마찬가지로 편성권은 정부에 있지만 심사권은 국회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간판공약인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 2조원 등을 관철할 때까지 추경안 처리를 막을 수 있는 의석이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추경안은 본예산과 달리 법정 처리시한이 없기 때문에 야당의 뜻대로 수정될 때까지 처리가 마냥 늘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야당의 이러한 속셈을 따져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지 않는다면, ‘경기대응 의지가 없다’는 비난은 정부 몫이다. 정부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제인 반면, 야당으로선 추경안이 ‘꽃놀이패’와 다름 없다는 얘기다.
한편 이날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참여 뜻을 밝힘에 따라 향후 ‘여야정 협의체’에서 추경 편성 문제도 다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지난 20일 처음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선 추경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