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 높이만큼 큰 상처…`시장 유고 3주` 흔들리는 서울시

`표준 선도한다` 자부심 컸던 서울시, 집단 트라우마
`성추행 방조·방관자` 취급에 공무원들은 위축감 커
"권리만 누리고 책임 안져"…6층사람들에 `늘공` 반감도
사기 저하 지속에 시정운영 집중력 떨어질까 우려도
  • 등록 2020-07-25 오전 8:30:56

    수정 2020-07-25 오전 8:30:56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노래방 가서 허리감기도 하고 술 취하면 뽀뽀도 하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정말 다 그러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괴롭네요. 마치 서울시청 전체에 이런 문제가 만연한 것처럼 비쳐지는 게 참담하고 억울합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인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으로 서울시가 `시장 유고`라는 사상 초유의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지 3주째로 접어 들었습니다. 올해 1월부터 코로나19 방역과 각종 지원 정책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냈던 서울시 직원들은 최근 일련의 상황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8년 8개월간 서울시를 이끌었던 수장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되는 것도 모자라 성추행 의혹의 조사주체에서 조사대상으로 전락하는 등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표준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공무원들이었기에 트라우마도 커 보입니다. 여성정책에서 만큼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직원내부 교육은 물론 정책 결정 전반에서 모범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를 받았던 터라 충격파도 클 수밖에 없죠.

특히 서울시청 내에서 일상적으로 성희롱·성추행이 발생했다는 여성단체의 폭로가 나오면서 멘탈이 붕괴되고 있다는 여성 직원들의 호소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서울시 직원들은 정말 바닥을 짚는 척 하며 다리를 만진다는데, 당해 본적 있느냐”, “택시 안에서 뽀뽀나 추행은 경험해본 적 있냐”, “조직적으로 성추행을 은폐하는 문화 아니냐”는 등의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직원은 “서울시 공무원이라는 점이 항상 자랑스러웠는데, 입사 후 처음으로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며 “피해자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시청직원 전체를 방조자나 방관자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불편한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인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직원들이 느끼는 혼란감도 커 보입니다. 전에 없던 사건과 그로 인한 외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조직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놀란 마음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는 건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침묵도 2차 가해’라는 비판까지 가해지면서 직원들이 느끼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도 상당하다는 전언입니다. 한 관리자급 공무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성을 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진상 규명이 아직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작정 내부 비판을 하기도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사태 초기 침묵으로 일관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른바 ‘6층 사람들’에 대한 불만감도 상당합니다.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어공’과 ‘늘공’으로 구분되는데요.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이들을, 늘공은 직업 공무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박 시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이들이 성추행 의혹에 대해 일제히 침묵하거나 잠수로 일관하면서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과 해명은 오롯이 시청을 늘공들의 몫으로 남게 된 영향입니다.

서울시청이 연이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보니 공무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성 추문 의혹 대응과 계속되는 사기 저하로 시정 운영에 집중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시공무원노조가 이달 중순 ‘추모-2차 가해 갈등을 넘어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성명서에서 “시청가족 모두가 시장이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해 가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서공노 고위 간부는 “심리적으로 점점 지쳐가는 상황이지만, 다들 긴장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시정 운영이 안정화될 수 있게 차분하게 지켜봐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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