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의사 노동시장 개혁이 진짜 의료개혁이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 등록 2024-02-29 오전 6:15:00

    수정 2024-02-29 오전 6:15:00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이 촉발한 의료대란 사태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역시 적정 의사 수다. 정책당국은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사 단체에서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는 핵심 논거는 필수의료 공급 부족과 의사의 고소득이다. 의사 수가 충분하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측은 핵심 논거로 대한민국의 높은 의료 접근성을 든다. 의사 수가 부족해서는 이렇게 의료 접근성이 높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양쪽의 근거 모두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양쪽 주장 모두 정작 중요한 핵심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논리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노동시간이다. 의사의 긴 노동시간과 고강도 노동을 감안하면 보상 차원의 높은 소득이 설명 안 될 것도 없다. 역으로 의료 접근성이 높은 것 역시 의사의 고강도 노동 투입이 있기에 가능하다. 의사의 노동환경을 논의에 포함시키면 양쪽의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논쟁을 하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가 적정하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긴 노동시간과 살인적 노동강도의 중심에는 전공의가 있다. 착취에 가까운 전공의의 노동 없이는 지금의 의료서비스 생태계는 성립할 수 없다. 숫자 면에서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높을 뿐 아니라 이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감안하면 전공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다.

의사 노동시장은 한국 노동시장이 갖는 기형적 구조의 축소판이다.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져 있고 높은 장벽이 둘러처져 있다. 장벽 안의 정규직은 고용안정과 고소득을 향유하는 반면 장벽 밖의 비정규직은 고용불안과 저소득에 시달린다. 담장 안에 있는 정규직은 가능한 한 소수를 유지하면서 더 필요한 노동은 비정규직을 활용한다.

(그래픽 = 김일환 기자)
지금 의사 노동시장도 이런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규직 전문의는 필요 인력보다 훨씬 적은 수로 운용하고 부족한 노동력은 수련생 신분의 비정규직 전공의가 채운다. 전공의는 고강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신분과 적은 소득을 감수해야 한다. 전공의는 착취에 가까운 노동을 감수한 대가로 전문의 그룹에 겨우 입성할 기회를 얻는다. 그것도 비정규직 전문의로.

이렇게 정규직 장벽이 높으니 전공의와 비정규직 전문의들은 차라리 정규직 트랙을 포기하고 비급여 진료가 성행하는 개업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필수 의료 공급이 부족해진 이유다.

현재의 의사 노동시장은 착취적 노동환경이 심각한 지경인데다 국가 전체의 인적자원 배분을 심히 왜곡하고 있어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의사 노동시장에 만연해있는 과잉노동을 해소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정책의 핵심인 것은 의사 노동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절대적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개혁의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덜렁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의사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의대 정원만 늘리면 어떻게 될까? 정규직 전문의 수는 늘지 않을 것이고 정규직에 들어가기 위한 전공의들 간의 경쟁만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의사 노동시장 구조가 그대로니 필수의료 공급 확대도 기대할 수 없다.

개혁 성공의 충분조건은 의사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기형적으로 높은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높은 장벽을 낮춰 전문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의사 노동시장의 구조변화와 병원의 비용 증가를 수반하는 이런 개혁은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저항도 더 집요할 수 있다. 의료개혁의 진정한 성패는 의사 수 증원을 넘어서 의사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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