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조 요시카츠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는 2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에서 ‘인구절벽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로’를 주제로 열린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을 통해 “2019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최한 연금 세미나에서 전 포르투갈 재무장관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연금제도 개혁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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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은 전 세계적으로 ‘방 안의 코끼리’다.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꺼내면 갈등으로 비화해 쉬쉬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연금요율은 1998년 1차 연금개혁 이후 25년째 9%로 고정된 상태다. 직장에 다닐 경우 사용자와 가입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구조다. 문제는 고령화로 연금수급 인구는 늘어나는데, 기금을 지탱할 인구는 저출산으로 줄고 있단 점이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가 이어지며 연금고갈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연금개혁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본 연금개혁을 지켜보고,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겐조 교수는 정치권의 개혁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날 포럼 패널로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겐조 교수의 제언에 힘을 보탰다. 안 의원은 이날 세션 좌장인 김명수 닛세이기초연구소 주임연구원의 ‘정권유지와 연금개혁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물음에 “정권유지보다 일관성 있는 연금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겐조 교수는 일본이 정권 교체 잦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에서 관료는, 고위공무원은 정치와는 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일본 갖고 있었다”며 “정책의 지속가능성, 장래성에 대해서는 관료와 정치권이 같이 매치되면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금요율 상한선 제시·거시경제 슬라이드, 日 국민 설득 주효 요인
겐조 교수는 자국 연금개혁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국민 설득’을 꼽았다. 연금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연금요율을 올리는 일이다. 지난 3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개혁에 한발 물러난 것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매년 0.6%포인트(p)씩 올려 단계적으로 15%로 올린다는 안이 공개되자 여론에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국민 지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연금요율을 올리는 건 그만큼 민감한 일이다.
연금요율 상한선을 지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이후 작업도 세심하게 이뤄졌다. 먼저 기금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2015년 공무원이나 사립학교교직원 등이 가입하는 공제연금을 후생(厚生)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성격)으로 통합했다. 그 결과 일본 공적연금은 20~64세 전 국민 가입이 의무화된 기초연금이 1층에 위치하고, 2층에는 직장인·공무원 등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으로 간소화됐다. 기금이 통합돼 커지니 안정성도 높아졌다.
일본이 2004년 도입한 거시경제 슬라이드도 연금개혁 성공을 뒷받침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란 인구와 노동시장의 변화를 반영해 자동으로 연금액을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매년 연금액을 조정할 때 후생연금 가입자 수가 감소할수록, 기대여명이 증가할수록 연금 인상률을 낮춰 지출을 억제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일본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의 이상적인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겐조 교수는 “연금을 건드린다는 것에 사람들은 히스테릭해진다”며 “(한국 정부는)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전제에서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